좋은 식재료가 음식맛을 결정한다 - 아귀탕의 깊은 맛

by 새로나무

<Round 1 - 한 끼니 여행>

2012년 겨울 포항공대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회의를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포항 구룡표 과메기는 기름이 잔뜩 올라있고 짠득짠득하면서도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그만이었다. 영일만친구 막걸리와 잘 어울렸다. 식사와 해장을 겸해 차려진 아귀탕에 그만 반하고 말았다. 국물은 깊고 진했다. 신선한 아귀살에 담백한 아귀 내장 맛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이 아쉽지만 포항은 거리가 멀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신선한 내장과 살이 살아있는 아귀탕을 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테이블에 올라오는 아귀탕에 소복이 담긴 아귀의 싱싱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끓고 있어서 숟가락으로 뒤적이려고 하자, 사장님이 가위와 집게를 들고 오시면서 손대면 안 된다고 하셨다. 영문을 몰랐는데, 아귀의 뼈를 하나씩 하나씩 발라내신다. 헐 이런 서비스는 처음 받아본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주 들르다 보니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먹기 너무 편하다. 성가신 뼈들을 다 발라내신 뒤 누런 간 부외와 위벽 부위를 각자의 접시에 잘라 올려주신다. 간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위벽은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다. 그러고 나서는 살을 음미한다. 물론 그 사이 우려낸 국물은 몸에 남아있는 긴장 덩어리들을 풀어내 준다. 미나리와 콩나물은 몸의 독소를 제거하기에 알맞은 정도로 익혀 먹는다. 국물은 후추와 청양고추, 마늘이 싱싱한 아귀와 어우러져 칼칼하고 시원한 맛을 더해준다.


그렇게 거의 바닥이 드러 날즈음 볶음밥을 시킨다. 볶음밥의 미덕은 고소함인데 여기에 더해 쫀득쫀득한 식감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한 두 숟갈로 아쉬움이 남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바닥이 드러나 없어질 때까지 숟가락이 자동적으로 오르내린다. 사장님이 직접 만든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다. 영지버섯, 홍삼 등으로 우려낸 시원한 차 한잔을 먹고 나면 입안 가득 개운함의 여운이 오후 내내 지속된다.


이스라엘 어느 마을에 살던 유대인 랍비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폴란드 어느 국경 다리 밑에 가서 거기를 파보면 보물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 갔다가 폴란드 국경 수비대장에게 잡혀온 랍비의 말을 들은 그가 무릎을 탁 치면서 자신이 며칠 전 꾸었던 꿈 얘기를 한다. 이스라엘 어느 마을 어떤 집 뒤꼍을 파보면 보물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꿈이다. 가만 들어보니 자신의 집을 얘기하는 것 같다. 풀려난 유대인 랍비가 집으로 돌아와 집 뒤꼍을 파보니 정말로 보물상자가 나왔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는 늘 무언가 행복한 일들을 찾아 밖을 배회한다. 정작 내 일상생활 속의 보물은 먼데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데 있는 게 틀림없다.


< Round 2 - 해장 여행>


술은 마실 때는 기분도 좋고 정담을 나눈 사람들과의 관계도 한층 돈독하게 해 주지만, 먹고 난 다음날 아침이 괴롭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무엇으로 해장할 것인지 갈등하다가 아귀탕을 찍었다. 마침 네 좌석이 있다고 해서 그리로 향한다. 해장 (解腸, 장을 푼다?, 술로 인해 생긴 숙취를 푸는 일 혹은 이를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와 그 문화를 총칭한다. ‘풀 해(解)’에 ‘숙취 정(酲)’을 써, ‘해정(解酲)’이라 했으나, 이것이 오늘날 해장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해장의 어원이 무엇이고 뜻이 무엇인지 살펴볼 정신이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아주 몸상태가 나쁜 건 아니다.


1단계 - 위벽, 장 주름, 간

음식을 준비하고 열을 가해 끓이는 동안 생각해본다. 나의 생명이 저 냄비에서 끓기 시작하는 아구의 생명을 먹음으로써 생명이 유지된다. 오늘 잡힌 아구는 저 심해에서 단련되고 길러온 몸을 나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드디어 끓기 시작하면서 1단계로 사장님이 직접 아구의 뼈를 바르고 위벽과 장 주름, 그리고 간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 주신다. 우선 급히 국물을 두세 숟갈 떠 넣어 아우성치고 있는 장을 잠재운다. 아구 내장과 살에서 빠져나온 기운들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는 세심하게 위벽과 장 주름, 간을 한 점씩 먹는다. 나의 내장은 빠른 속도로 진정된다.


2단계 - 미나리와 국물 그리고 아귀 내장과 아귀살

해독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미나리가 들어오자 국물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국물의 맛은 미나리 넣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깔끔한 맛에서 시원한 맛으로 가는 중이다. <시원하다>라는 표현은 하나의 대륙을 형성한다. 그 대륙을 이루는 <시원하다>라는 국가가 있다. 그리고 <시원하다>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있으며, <시원하다>라는 읍과 면과 동이 있다. 맛에 대한 표현은 그 깊이를 가늠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냄비 아래에 깔려있는 콩나물과 미더덕, 미나리, 청양고추, 후추 등의 양념들 간의 신경전에서 얻어진 국물은 나의 내장을 불완전 궤도에서 안전궤도로 진입시켜준다. 내장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과도 같은 든든한 생명들이다. 국물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계속 국물과 대화를 나눈다.


3단계 - 볶음밥 올림픽이 있다면 적어도 올림픽 동메달 감 이상의 볶음밥과 후식

올림픽에 메인 요리의 끝에 등장하는 <볶음밥과 후식> 종목이 있다면 적어도 메달권에 충분히 진입할 수 있는 걸출한 맛이다. 아귀 국물의 옅은 흔적과 김가루가 덤으로 입안에 퍼진다. 메인 요리는 메인 요리고 볶음밥은 볶음밥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맛나게 먹었다. 사장님이 가르쳐준 간장 고추냉이 레시피를 살짝 첨가하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밥알 한알 한 알의 느낌과 으깨지는 밥알들의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최후의 한 주걱은 볶음밥 누룽지. 고소함의 끝판왕이다. 영지버섯, 홍삼, 대추 등으로 우려낸 저 후식은 입안을 깔끔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아!! 해장은 덤이었다.


후추의 피페린 성분은 염증이나 통증을 개선해주고 소화를 촉진하며, 장 건강을 개선해준다. 미나리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에 좋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독소 및 노폐물 배출, 간 해독 및 간 기능 개선, 장내 유익균 증진, 항산화 물질이 들어있다. 콩나물은 숙취해소, 변비 개선, 비타민과 철분, 나트륨 배설에 좋은 칼륨 함유, 면역증진에 도움이 된다. 음식은 약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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