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장 생태계를 위한 선택

- 우렁된장과 청국장과 묵은지

by 새로나무

20여 년 전 처음 이 가게를 방문했을 때는 주인아주머니께서 기운이 펄펄하셨다. 이십 대 청춘의 내게 식사 중 잘 처먹으라는 욕은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무례한 듯했으나, 이미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셨던 선배들은 웃음으로 넘겼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주인아주머니도 노쇠해지셨다. 가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들러, 왜 지금은 예전처럼 욕을 안 하시나 하니,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욕도 할 기운이 없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신다. 그렇게 욕쟁이 할머니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으나, 세월이 흘러도 음식 맛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오랫동안 새로운 식재료를 같은 맛으로 만들어온 가게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어제의 식재료와 오늘의 식재료는 각기 다르다. 주말농장을 딱 1년간 가꾸었다. 게으른 내게 그 땅 다섯 평은 무언가를 키우기에 엄청 광대한 곳이었다. 상추와 고추, 토마토 심고 가꾸는데 바로 옆이라 하더라도 자라는 속도와 생김이 미세하게 달랐다. 그 식재료들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그 성질을 적절히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천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축적된 경험 이리라. 그 내공의 세계를 매일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누리는 행복 중 하나다.


에머런 메이어는 <뇌와 장의 은밀한 대화 더 커넥션>에서 Micro Biome의 세계를 소개했다. 사둔 뒤 1년이 지난 책을 읽기 시작하게된 계기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Micro Biome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나서다. 읽으면서 내 몸 특히 장의 메커니즘에 대해 놀랐다. 장내 미생물의 역할과 장내 생태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고, 인체 면역기능의 85% 이상을 장이 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장이 뇌와 연결되어있고 심지어는 치매나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 건강에 좋은 음식들의 2/3 이상은 식물들이며, 201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통식단이 대단히 건강하다고 말했다. 식물의 뿌리와 줄기와 잎을 모두 먹으며, 특히 콩류와 김치류와 같이 유산균이 함유된 음식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후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지중해 식단과 하버드 공공대학원의 표준식단 그리고 우리의 전통식단의 유사성을 알게 되었다.


열을 잔뜩 가한 작은 냄비에 우렁과 채 썰은 양파, 그리고 이 집만의 독특한 된장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나오면 얼른 숟가락으로 비빈다. 비비는 동안 숟가락에 우렁의 탱탱함과 된장의 부드러운 질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렇게 비벼진 우렁된장을 쌈에 올려 먹는다. 씹히는 맛이 좋은 우렁을 된장이 부드럽게 감싸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쌈채소는 상추, 치커리, 깻잎, 케일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요즘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을 사전에서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후추의 효능을 찾아본 뒤 생긴 버릇인데, 특히 식물 식재료의 효능을 보면 하나하나가 보약이다. 이 쌈채소들도 하나하나가 보약이다. 상추에 깻잎과 치커리를 더해 쌈이 줄 수 있는 최대의 맛을 낸다. 치커리의 약간은 쌉싸름한 맛과 깻잎 특유의 향이 상추의 아삭함과 버무려져 우렁된장의 맛을 극대화시킨다.


청국장은 그 깊고 구수한 맛이 쌈과 잘 어울린다. 청국장은 짜지 않아 쌈 한 잎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먹는다. 보통은 짙은 냄새가 나지만 이 곳의 청국장은 은은하다. 고등어와 묵은지 역시 장 건강에 좋은 음식들이다. 묵은지는 잘 숙성되어 아주 부드럽다. 고추, 마늘, 나물, 열무김치도 절임음식이라 역시 장 건강에 좋은 음식들이다. 표주박에 누룽지를 떠서 밥을 먹던 놋그릇에 덜어 먹는다. 왠지 놋그릇의 무게와 대조되는 가벼운 맛이 느껴진다. 누룽지 국물은 고소하다.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오늘은 장에게 뭔가 큰 기여를 한 듯한 뿌듯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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