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어 맛을 발견하다 - 담백한 칼국수

-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생선전과 담백한 칼국수

by 새로나무

오랫동안 가게 되더라도 그 진가를 잘 모르다고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늦게 진가를 발견하게 되니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낀다. 무언가 소중한 것들에 대해 나 스스로 그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인을 통해 혹은 어떤 우연찮은 계기로 진가를 깨닫게 되면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같이 먹어야 한다. 소중한 것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니 늘 등잔 밑을 잘 살펴야 한다.


날씨와 음식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오늘은 빗방울도 간간이 뿌리는 약간 어두운 날씨다. 칼국수를 먹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다. 칼국수를 먹기 전 수육과 문어, 생선전 중 선택은 당연히 생선전이다. 생선전의 부드러운 느낌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얀 생선 속살을 살짝 감춰둔 밀가루는 주인공을 소개하는 커튼 같은 역할을 한다. 생선전도 디저트처럼 입안에서 녹을 수 있다. 그냥 녹는 것이 아니라 한껏 부드러운 맛을 보여주면서 녹는다. 생선전에 간장을 살짝 바른다. 간장은 맛이라는 연못 깊이 내려가서 주변으로 동심원처럼 밖으로 퍼져나간다. 간장은 생선전을 돋보이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김치의 신맛은 매력적이다. 비주얼이 좋다고 김치가 맛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숙성되어 어두운 빛을 내는 김치와 밝은 빛을 내는 김치가 같이 섞여있고 거기에 듬성듬성 무도 섞여 있어 겉으로 보이기에는 아주 투박하지만 깊고 매력적이다. 시큼하면서도 약간은 달큼한 그런 맛이라고 나는 느낀다. 그 김치는 생선전과도 잘 어울린다. 생선전과 칼국수 사이 듬성하게 여백의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 손님이 많을수록 그 여백의 시간과 공간은 휑하다. 그 휑한 시간과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생선전을 한 접시 더 주문한다. 금방 채워진 시간은 다시 한번 부드럽고 촉촉하며 겉은 약간 바삭한 생선전의 세계로 채워진다. 다음에 먹지 뭐 하는 얘기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다음은 기약이 없다. 그러니 지금 먹어야 한다. 그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드디어 칼국수가 나왔다. 보통과 곱은 천 원이라는 가격차이에 비해 거의 한 배 반 정도의 양이다. 가게 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배려라고 생각한다. 칼국수 국물은 담백하다. 양지와 사골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여 우려냈는지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다. 음식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레시피를 공부할 것도 아닌 순수한 고객의 입장에서 맛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칼국수 국물은 그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일관된 담백함을 선사한다. 그 담백함 안에서 나의 속은 편안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국물은 장을 따스하게 감싸며 장안의 생태계의 질서와 조화롭게 어울린다. 칼국수의 면발은 굵은 것과 가는 것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그런데 그 어지러움은 잠시일 뿐 입안에 들어가서는 굵은 면발의 탱글한 식감과 가는 면발의 여린 식감이 잘 어우러져서 입맛을 돋게 한다. 양념간장은 담백한 국물의 담백함을 더 돋보이도록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그 고소함이 전체 국물 맛에 변화를 준다.


칼국수의 세계는 막국수나 평양냉면의 생태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게마다 칼국수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고 육수를 내는 방식이 다르며, 김치가 다르고 사이드 메뉴인 생선전, 수육, 문어가 다 다르다. 그 가게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각각의 가게가 쌓아온 내공을 흡수해서 내 몸의 생태계를 건설적으로 발전적으로 꾸미는데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다녀보리라. 비교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한 끼니 속에서 길어 올린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한 끼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행복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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