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 한 번에 깨닫는 게 아니라 평생 배우면서 깨닫는 지혜
미세먼지가 심상치 않다. 지난 2월부터 중국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석탄 중심의 난방을 멈추기 시작하면서 맑아진 하늘은 한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6월에 다시 중국의 제조업 공장들이 가동되기 시작한 뒤에도 맑은 날씨는 계속되었고 가을에는 맑고 뚜렷하며 다양한 층위의 모양을 갖춘 구름들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중국에서 난방가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짙어졌다. 하루 종일 뿌연 먼지로 뒤덮인 서울 하늘이 베이징의 대기보다 낫다는 말은 전혀 위로가 안 된다.
이렇게 먼지가 많은 날은 계단을 오르려 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약간은 무겁게 만든다. 언제나 시작할 때는 양쪽 다리를 계단에 걸쳐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스트레칭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괴로움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많다. 특히 발끝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쭈욱 펴지는 느낌과 이제는 상체도 조금씩 숙이게 된다. 물론 유연하게 동작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작년 초만 해도 스트레칭을 할 때 잘 숙여지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 역시 사람의 몸은 쓰면 쓸수록 상황에 맞게 유연해짐을 느낄 수 있다. 강함보다는 유연함이 훨씬 더 몸을 위해 낫다는 생각에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21층까지 가는 길은 여러 계단이 있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가 걷는 걸음을 자각하며 오른다.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발바닥과 발목과 종아리와 허벅지의 상태를 자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계단과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자세히 관찰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나의 신체적 상태를 이렇게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일에 몰입하고 상황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을 잠시 잊기도 한다. 지금은 오직 나에 대해 집중하고 자신의 몸의 흐름을 관찰한다. 날씨가 약간은 쌀쌀하기도 하지만 먼지 때문 에라도 계단 창문을 열지 않는다. 약간은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단을 오르며, 나의 마음과 생각을 관찰하게 된다. 어떤 일로 생긴 감정의 상처는 쉽게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역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큰 상처가 아니라 사소한 상처라 하더라도 아무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왔다 나간 뒤 통증과 그 흔적도 사라지는 데는 최소한 며칠이 걸린다. 하물며 마음에 생긴 생채기가 금방 사그라든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계단을 오르며 감정적인 안정을 취하면 금방 사그라들 걸로 생각했다. 그건 나의 작은 착각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떨쳐내기 위해 스스로를 압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히려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그것조차도 못 떨쳐내는 거냐고 다그치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지금처럼 약간의 노력을 하되 그냥 그 상처를 담담하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언젠가는 아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혹은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이고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에 관한 내용들은 한 번에 완성될 수도 없고 한 번에 깨달을 수도 없다. 평생 조금씩 책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그리고 스스로 깨달아가며 겨우 겨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가끔은 뒷걸음질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이 계단을 한 걸음씩 옮겨놓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느끼고 깨닫고 깨달은 바를 다시 실천에 옮기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나는 겨우 어제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오히려 나의 마음을 부담 없게도 해주고 또 한편으로는 긴장하게도 만든다. 그 사이사이에 약간의 여유와 휴식의 공간을 나를 위해 만드는 약간의 전략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계단을 오르는 것이 여유와 휴식의 공간이 되고 있음을 오늘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