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Nov 22. 2020

깔끔하고 개운한 선지 해장국과 부드러운 내장수육

- 수천 년 이어온 조상들의 내공을 맛보는 기분

때로는 말이라는 것이 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음식의 맛을 표현한다는 것은 약간 헛소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순간이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그 음식과 상황이 아주 잘 떠올라 술술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표현 너머에 음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맛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한계 지점 근처를 배회하고 싶은 욕구와 음식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먹는 개별적 체험을 통해 사람들의 보편적 입맛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쁨도 함께한다.


코로나 19는 한창 인테리어 사업을 진행하는 친구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혼자 일하다가 직원도 세명을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급휴직을 권해야 할 수도 있다고 얘기한 시점이 3월이었다. 먼저 전화를 해주지 않으면 내가 연락을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 친구가 반갑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저쪽 너머에서 미소 짓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이쪽으로 전달된다.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있다. 1년간 진행할 사업을 수주했으며,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반가운 뉴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술을 한잔 서로 권하며 축하인사를 진하게 나누었다. 그 진한 축하의 뒤꼍에서 약간 쓰린 속을 달랠 음식을 찾아 나섰다.


27년이 지났지만 진한 국물 맛은 변함이 없다. 처음에는 엷은 맛으로 시작해서 진한 곳으로 이동시킨다. 국물에 얹어놓은 고명은 직선으로 바로 다가오지 않고 저 먼 곳들을 우회하면서 선지 해장국의 포괄적인 맛을 감싸안는 느낌이다. 첫 국물 맛부터 깔끔하고 개운했으며, 리필한 국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실 때까지 지속되었다. 싱싱한 우거지는 장국의 식감을 한껏 끌어올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높이 올라온 느낌이다. 그리고 선지 덩어리는 이 해장국의 본질을 곧바로 깨닫게 해 준다. 비린 맛은 완전히 제거되었으며 한없이 부드러운 짙은 속살을 내보이며 숟가락을 계속 부른다. 해장국에 깊이 들어가 한참을 수영하다가 잠시 뭍으로 올라온다.


뭍에는 내장수육이 나의 젓가락을 기다리고 있다. 음식에 대해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어쩌자고 음식을 비교하는지 그리고 그 비교하는 맛의 절대적인 기준이 각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각 수용체의 개별적 특수성을 납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지 말이다. 내장수육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한없이 부드러운 그 내장수육은 몸안으로 깊이 퍼지며 나의 내장을 감싸 안는다. 나의 생명은 저 푸른 초원에서 자란 소의 내장을 통해 유지된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내장수육은 깊이 있는 질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하루나 이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생각나게 하는 그런 맛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역시 아는 것과 맛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이 맛은 나의 뇌를 자극하는 맛이다. 뇌는 끊임없이 그 내장수육의 맛을 되새김질한다.


해장국과 내장수육을 번갈아 여행하는 사이에 쓰린 속은 완전히 달래 졌다. 내장은 따뜻한 온기가 감싸고 있어서 한없이 편안한 느낌이다.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다면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대단한 내공과 깊이를 간직한 말을 되새긴다. 즐겁게 마시고 깔끔하고 개운하게 해장할 수 있는 이 메커니즘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단단히 다져졌을 것이다. 그 전날 울고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다음날 속을 달래기 위한 음식을 만들어온 역사를 한 그릇 진하게 먹고 나온 이 개운한 기분!!




매거진의 이전글 메기 매운탕 국물에 땀을 흘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