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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9. 2020

메밀막국수와 국물의 향기 그리고 장내 미생물

- 음식에 관한 과학적 접근의 문턱에 서서

음식은 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음식을 선호할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 뱃속에서 어머님에 의해 경향성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라나서 부모님과 다른 환경에서 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입맛도 변하고 선호하는 음식도 변하고 잘 맞는 음식도 변했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음식 목록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음식이 메밀이다. 그것도 100% 메밀로 빚은 음식이 잘 맞는다. 잘 맞을 뿐만 아니라 맛있다. 어떻게 먹든 맛있다. 그 형태로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막국수다. 그런데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메밀음식을 언제부터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음식과의 상관관계는 영원한 숙제다. 때로는 일상 속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 하나 정도는 갖고 사는 것도 괜찮다. 계속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때문이며, 매 끼니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실마리를 나는 에머런 메이어의  <더 커넥션 - 뇌와 장의 은밀한 대화>를 읽으면서 찾게 되었다.


그는 책에서 우리 몸의 장내에는 적어도 100조 개 정도의 미생물이 우리와는 독립적으로 살고 있으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장내 미생물들은 인간의 면역시스템을 교육하고 단련시켜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기능을 하고, 대사작용을 통해 체내 소화효소로 분해되지 않은 전분이나 다당류를 분해하여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함은 물론 비타민, 엽산, 단쇄 지방산 등 필수적인 영양소를 공급한다. 또한 콜레스테롤, 쓸개즙, 약물의 대사에도 관여하여 다양한 대사산물을 만들어낸다. 셋째, 유전자 발현의 스위치 역할을 통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부모에게 나쁜 유전자를 물려받았더라도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가지고 있고 좋은 음식물을 섭취한다면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지 않아 발암 유전자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 곧 음식을 잘 가려서 먹는다면 얼마든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내 미생물군의 건강은 섭취하는 음식에 좌우되며, 장내 미생물군의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태어난 후 첫 몇 해 안에 결정된다.> 바로 이 지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 어릴 적에 장내 미생물군이 형성된다는 것은 우리의 음식의 선호에 대한 경향성도 어느 정도 정해진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장내 미생물군에게 무엇을 먹이로 주더라도, 이들은 수백만 개의 유전자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이용, 부분적으로 소화된 음식을 수백, 수천만 개의 대사산물로 바꿀 것이다. 대사산물은 위장관과 그 안의 신경, 면역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혈액으로 흘러들어 장거리 신호전달 경로를 통해 뇌를 포함한 모든 기관에 영향을 준다. 특히 비만, 심장질환, 만성통증,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된 저강도 염증반응을 유도하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장내 미생물의 발견보다 한참 먼 과거의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이라는 프랑스 법관이 남긴 말이다. 그는 요리에 관심을 갖고 미식을 하나의 학문으로서 추구하면서  <미각의 생리학>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라는 말을 통해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가 먹은 음식이다. 그가 쓴 책을 읽어봐야 하겠지만 음식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미각과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이 흥미로운 사람의 책을 꼭 읽어보리라. 


광릉으로 다니던 길은 나 혼자 좋다고 다니던 길이다. 친구들과 선배들과 후배들과 어울려만 다녔지 가족들과는 처음 온다. 파라과이에서 인턴십을 하고 돌아온 딸에게 막국수를 권한다. 차멀미를 하는 딸을 겨우 겨우 설득해서 길을 나섰다. 메밀에 포함된 루틴은 이뇨작용을 도와준다. 그리고 인체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의 탄력성을 지켜주며 혈압과 혈당치를 강화시키는 작용과 췌장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효능이 있다. 필수 아미노산 및 비타민은 비만을 예방하고 피부미용에 좋으며, 활성산소가 형성되는 것을 막아주어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며,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손상된 간세포의 재생을 촉진하고 간의 해독 기능을 강화한다. 이쯤 되면 음식이 아니라 약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메밀로 만든 음식이 맛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메밀로 만든 음식은 메밀묵, 메밀막국수, 메밀냉면(평양냉면) 등이 언뜻 떠오른다. 음식이 나오기 전 잠시 조용히 눈을 감고 평창 메밀밭 하얀 메밀꽃이 핀 광경을 상상한다. 그 향기가 조금씩 내 몸에 깊게 깊게 퍼진다. 이 집은 즉석에서 메밀 100%의 메밀막국수를 내어놓는다. 주방 안쪽이 훤히 공개되어 있어 면을 직접 찌고 뽑는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우선 막국수 그릇을 양손으로 받치고 국물을 한 모금 입안에 넣고 그 감도는 맛을 음미한다. 어느 사이엔가 평양냉면과 막국수를 먹을 때면 하는 버릇이 되었다.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첫 국물 맛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이걸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시원한 맛, 약간은 단맛, 그리고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다. 매번 먹을 때마다 그 맛은 변하여 그 순간의 맛의 느낌을 언어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평양냉면과 메밀막국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든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음식이 아니라 같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치미와 육수 국물에 관해서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음식점에 가면 같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아마도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국물을 한참 음미하고 비로소 젓가락으로 편육을 국수 위에 올리고 무 한 점과 김치 한 점을 한 번에 한 젓가락으로 올려 먹는다. 국수를 흡입하듯이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언제나 국수를 들어 올리는 과정조차도 즐기며 천천히 입으로 넣고 그 메밀이 입안에서 툭툭 끊어지며 입안으로 퍼지는 그 느낌을 오롯이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이렇게 먹다 보면 포만감을 느낄 틈 없이 어느 사이엔가 국수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그리고 면과 국물의 비율이 적절해지도록 면과 국물을 번갈아 입안에 넣고 음미한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거의 국수와 국물이 다 비어져가도 아쉬움이 덜하다. 마지막 마무리는 몇 갈래의 면과 남은 국물을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릇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깔끔하게 원샷하며 끝내는 것이다. 나중에 체인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체인점이라고 다 맛이 표준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천편일률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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