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는 발걸음

by 새로나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에서 몸 전체를 scan 한다. 발끝에서 발목, 정강이와 무릎, 허벅지와 엉덩이, 허리와 척추를 따라 올라가 정수리에서 다시 눈으로 살포시 내려온다. 이번에는 손끝에서 손마디와 손등, 손목, 팔꿈치, 어깨와 늘 나를 괴롭히는 승모근을 지나 목을 타고 입과 코를 거쳐 다시 눈으로 올라온다. 한번 더 내려가 이번에는 단전에서 천천히 장과 위를 지나 심장과 폐를 거처 목을 넘어 다시 눈으로 올라온다. 몸의 한구석 한구석을 모두 살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깨어나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불가사의한 느낌이 든다. 살아있음의 의미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이렇게 생생하게 매번 느끼는 그 느낌에 집중한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마와 볼의 안색은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 붉은 기운이 옅게 혹은 조금 더 짙게 드리워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까만 눈동자와 흰자위를 잘 살펴본다. 탁한 기운인지 맑은 기운인지 자세히 관찰한다. 맑으면 맑은 대로 탁하면 조금 더 여유 있게 행동하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2012년 어느 날 저녁 화장실에서 우연히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존재를 가슴속 깊이 깨달았다. 물론 그 깨달음은 곧 먼지처럼 흩어져 다음번 거울을 볼 때 다시 살아나고 그러기를 계속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차츰 내가 가진 존재감, 자존감, 멋있음에 대한 잔상들이 쌓여 가면서 내가 받는 상처들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오래 머물지 않고 빠른 시간 안에 사라졌다.


나를 만드는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임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은 매일매일 나 자신을 느낀다. 바로 그 지점, 나를 깊고 넓게 이해하는 곳에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를 알아갈수록 타인을 대할 때 말 한마디, 행동 한 가지를 조심하게 된다. 내 말과 행동이 가닿을 때 그에게 어떤 느낌일지를 나를 통해 그를 보게 된다. 굳이 겸손이라는 단어를 꺼낼 필요도 없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계단에 투영된 나를 느끼려고 한다. 내가 지금 여기서 발을 딛고 있는 이 느낌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나의 몸은 거대한 생태계다. 수십조의 세포들이 나고 자라고 사멸하는 곳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나를 닫고 있던 마음을 한 걸음씩 옮기면서 열어둔다.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다진다.


내 몸이 작동하는 방식은 매번 달리 느껴진다. 완전히 알기는 어렵지만 전체로서 느낄 수는 있다. 그 몸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가길 바라고 있다. 상체와 하체의 균형, 오른쪽과 왼쪽의 균형, 몸과 마음의 균형, 마음과 생각의 균형 속에 나는 살고 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가 땀이 흐르면서 조금씩 기분이 좋아진다. 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에도 수많은 타인들에 대한 잔상이 비친다. 그들에 대한 좋았던 기억과 약간은 섭섭했던 기억이 교차한다. 타인과 좋았던 순간만 기억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섭섭하거나 상처 받은 일들 혹은 그들이 생각하는 의도와는 다른 그 무엇을 혼자 상상하면서 스스로 감정을 다치기도 한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어야 한다. 마음에 생긴 상처는 그날 풀어야 한다.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서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공중에 먼지처럼 흩어지도록 하면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계단은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개다. 물론 계단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는 1/3, 어느 때는 절반 가까이 어느 때는 100% 날려버린다. 확실한 매개체가 늘 나의 일상 속에 있다는 것, 커다란 자산이다.

(147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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