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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r 26. 2021

한 끼니를 앞에 두고

한 끼니는 내게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더도 덜도 주어지지 않는다.

에너지를 쏟은만큼 세상이 나에게 주는 것이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그건 내가 잘나서 받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까지


오늘 나는 끼니 앞에서 숙연해진다.




오랜 세월동안 한 끼니의 밥상을 받아든 조상들의 그 헤아릴 수 없는 끼니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이 쏟았을 엄청난 에너지를 상상한다.

지금처럼 물류가 발달되지도 않고 분업화가 되지도 않고

척박한 환경속에서 얻었을 그 한 끼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받아든 한 끼니의 소중함을 가늠해보게 된다.


1970년대 지하 300미터 탄먼지 날리는 갱안에서

식어버린 도시락을 드셨던 아버님의 끼니만 떠올려본다.

세상을 향해 뻗쳐놓은 그 에너지는 당신의 끼니만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 넘치는 에너지는 그 끼니 뒤에 나의 끼니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다 받아든 한 끼니는 엄밀히 말해 내가 만든 에너지에 아버님의 잉여에너지가 결합된 선물이다. .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칼의 노래> - 김훈 중에서


이순신 장군은 사직을 지키려는 임금과 끊임없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조정의 중신들, 일본군과 내통하면서 적당히 전공을 세우려는 명나라 군사들과 일본군 등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다급한 것은 전란으로 군량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사들의 매 끼니를 해결해야하는 어려운 숙제가 장군에게 매 순간 놓여 있었다. 그 아득한 심정을 따라가다보면 한 끼니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비로소 철이 드는 것인가 ?

끼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만 것인가 ?


매번 끼니를 앞에 두고 물어야 한다.

내가 끼니에 합당하게 세상 에너지를 주고 받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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