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차가운 빗속 아늑한 삼미시장

by 새로나무

봄과 여름 사이의 경계선에서 이틀 째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옷이 젖기도 하고, 발걸음도 조심스러워 쉽게 밖을 나서지 않게 된다. 촬영을 위해 가야 한다는 아들을 태우고 시흥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미리 검색해두었다. 검색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시장 앞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첫인상이 좋았다.


시장 간판이 예쁘다. 삼미시장과 연관된 단어는 조선조 뱀내장터라는 토박이 말이다. 뱀내는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모양의 냇가> 요, 장터는 <시장이 서는 장소>라는 의미다. 즉, 뱀내장터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하천 주변에 서던 장터’라는 뜻이다. 지금은 뱀내장터라는 정기 시장은 사라지고 자연 발생적으로 삼미시장(三美市場)이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되었다고 한다.


三美라는 단어는 프로야구팀을 떠올리게 한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삼미 슈퍼스타즈의 지역 연고지는 경기 인천 강원이었다. 내가 살던 강원은 생뚱맞았다. 그래서 나는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김용희와 김용철이 있던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게 되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출범 당시부터 수많은 패배의 기억들 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모기업도 사라지고 다른 구단으로 인수되었지만 여전히 삼미라는 이름은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10여 년 전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 클럽>이라는 작품 속에서 이 팀은 우리가 겪었던 현실과 묘하게 겹치면서 강렬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그의 글을 통해 장면 장면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저 먼 곳에서 우리를 웃게도 하고 눈물짓게도 하며 단단한 추억의 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점을 남기는 추억이든, 자랑스러운 추억이든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 추억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시장을 다니면서 곧바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는 것도 방법이지만, 전체적인 시장의 짜임새를 살펴볼 겸, 그리고 사야 할 것과 먹을 것을 탐색할 겸 한번 쭉 돌아보는 일은 즐겁다. 이제는 시장을 가게 되면 아예 굶고 간다. 그래야 시장 탐색이 더 즐겁다. 먹을 것과 살 것들이 즐비한 시장으로 들어간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잊고 있던 것!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그 공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즐거움을 시장은 다시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느낌을 시장만큼 강렬하게 알려주는 곳이 또 있을까?

중앙통로가 메인이고 옆으로 난 통로에도 가게들이 있으며, 시장을 둘러싸고 펼쳐진 가게들이 시장 가게들과 사이좋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먹거리를 파는 곳이 집중해 있는 곳은 아예 시장 가운데로 앉아 먹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놓았다.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으며 술을 한잔 하는 모습은 정겨워 보인다. 차만 아니면 여기서 앉아 먹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장에 오면 먹을 것들이 많다. 다 먹을 수 없다. 위장이 커졌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어묵을 하나 집어 든다. 아쉬움에 또 하나 집어 든다. 더 먹고 싶으나, 식사를 위한 곳은 남겨둬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 장에 2천 원인 메밀전은 고소한 메밀 맛과 묵은 김치의 시큼한 맛이 서로 잘 어울린다. 전을 부치는 앞쪽과 주방,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가게 주인들의 내공이 이 메밀전 한 장안에서 느껴진다. 메밀막국수 정식 역시 넉넉한 음식 양에서 시장의 인심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물막국수 국물 맛은 새콤달콤했다. 새콤한 맛은 식초와 관련이 있고 단맛은 새콤한 맛의 한참 아래에 있어서 먹기에 편하다. 채 썰어 놓은 배와 오이, 그리고 무와 듬뿍 들어간 참깨가루와 참깨가 잘 어우러진다. 무김치와 보쌈 한 조각을 면위에 올려 먹는다. 다른 어떤 것도 추가할 필요가 없는 분명한 맛에 빠져든다.


들깨칼국수의 국물은 약간 텁텁하면서도 고소하며, 온기가 스며들어 있어 입안과 속을 따뜻하게 보호해주는 느낌이다. 호박과 감자, 당근이 메밀과 어우러져 다양한 맛을 볼 수 있었다.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 활성산소 형성을 막아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며 루틴 성분은 모세혈관의 탄력성을 지켜준다는 메밀의 효능을 보니 새삼 좋은 음식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간 기능과 이뇨작용을 원활히 하는데 좋다고 하니 음식이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재료를 산다. 할머니가 손수 구우신 김을 세 봉 사고, 두부와 묵을 샀다. 그리고 저녁거리로 족발을 사는데 그 칼질을 하시는 모습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배추 한 망과 얼갈이배추 그리고 열무를 포함 8천 원에 샀다. 아내가 오자마자 김치를 담그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로 두부와 족발을 먹는다. 한 가게를 형성하고 음식으로 일가를 이루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노력과 내공의 깊이를 음식 한 입을 먹으며 느끼는 것 또한 시장 탐색의 보람이다. 두부는 콩비린내를 살짝 감춘 채,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선사한다. 족발은 잡내가 없고 쫀득하고 부드럽다.


우리의 일상에서 시장은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저 멀리 있어서 가끔 가는 곳이 아니라 늘 자주 찾아보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아늑한 곳이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발걸음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그동안 봐왔던 온갖 시장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따뜻한 미소와 내공이 깊이 쌓인 단단하고 안정된 손길을 내주는 가게 주인들이

만드는 놀라운 시장 생태계가 꿈속에서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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