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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24. 2021

밥상을 휘젓는 갈치속젓

보통의 갈치젓은 내장과 비늘을 제거해 통째로 소금에 절여 2~3개월 동안 숙성시킨 것인데, 남도지방으로 여행을 하거나 출장을 갔을 때 데면 데면 맛보았다. 처음에는 제주에 가서 먹어본 자리돔 젓갈처럼 쉽게 젓가락이 가닿지 않는 음식이었다. 아 그런데 갈치의 내장만 따로 모아 염장 숙성한 갈치속젓을 작년에 우연히 마주 대했다. 그것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고 식사를 마칠 무렵 궁금해서 조금 떠서 먹어보니 묘한 맛이 느껴졌다. 공깃밥을 별도로 주문해서 그만 한 그릇을 다 먹고 말았다. 고소하면서도 약간은 친근한 짭조름함과 함께 비릿한 바다내음이 여느 생선 비린내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 비린내는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그런 비릿함이었다. 밥과 너무 잘 어울렸다. 


갈치는 심해에서 서식한다. 2~3월경에 제주도 서쪽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4월경에 북쪽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여, 여름에는 남해와 서해, 중국 근처의 연안에 머무르며 알을 낳기 시작한다. 암컷 한 마리는 산란기간 동안 10만여 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치는 작은 물고기나 오징어나 새우, 게 등을 먹고 산다. 계절에 따라 집단이 커진 경우에는 종종 서로를 잡아먹기도 한다. 7~11월 사이에 많이 잡히며 단백질이 풍부하고 맛이 있다. 여름, 가을에 먹는 갈치 맛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은분의 성분은 구아닌이라는 색소로 진주에 광택을 내는 원료 및 립스틱의 성분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녀석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 갈치 맛을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고등어에 비해 값나가는 생선인지라 아주 가끔 밥상에 올라왔다.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어느 쪽도 처음에는 잔뼈와 가시가 주는 두려움에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한두 번 갈치 가시가 목에 걸려 성가시고 아팠던 기억이 갈치 살의 단맛을 반감시켰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늘 어머님께서 발려주시기를 기다려 먹었다. 갈치 살은 정말 감질나는 고소하고 단맛을 내게 주었다. 제주 출장을 가면 제주 전통음식점에서 갈치구이를 먹었다. 그렇지만 비릿한 냄새의 갈치젓은 손이 가지 않았다. 밥상 위에 보물이 올라와도 그 보물을 몰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메인 메뉴인 보리굴비와 갈치조림과 남도식 반찬들이 즐비한데, 갈치속젓을 담은 접시가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 같다. 그 탐스런 붉은색은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녹이고도 남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젓가락으로 살짝 맛을 본다. 혀끝에 그 비릿한 맛이 와닿는다. 갈치들이 다녔던 심해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햇빛이 희미한 심해 50-300미터 지점의 바닷속에서 갈치는 어떤 일상을 살았을까? 흰 밥에 갈치젓을 살짝 올려 먹는다. 밥과 갈치속젓이 뒤엉키며 내는 맛의 조합에 취해 어지러울 정도다. 아 이대로 무너진다면 다른 반찬들을 미처 먹기 전에 배가 부르고 말 것이다. 맛있을수록 인내해야 그 맛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방향을 돌린다. 고등어는 회와 조림도 맛있지만 역시 구워놓은 고등어가 단연 압권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뽀얀 속살은 혀에 와닿는 감촉만으로도 아늑하다. 짠 득한 보리굴비와 부드러운 갈치조림의 갈치 살과 무. 그러다가 결국 다시 갈치속젓으로 향한다. 그 여운이 오후 내내 남는다. 아마도 이 갈치속젓의 맛은 지역마다 다르고 가게마다 다를 것이다. 그 묘한 차이를 발견하고 싶다는 작은 목표를 세워본다. 마치 평양냉면이나 메밀막국수의 미묘한 차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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