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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31. 2021

순백의 맛 - 고소한 순두부와 추억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님은 다섯 분이 동업을 하시는 작은 공장 운영에 참여하셨다. 두부와 나의 인연은 거기서 시작된다. 아버님은 두부 판매량에 따라 새벽 1시에서 4시 사이에 출근하셨다. 전날 물에 불린 콩을 갈고 간수를 붓고, 틀에 넣어 두부를 만드는 과정을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에 두부나 콩물 혹은 순두부를 가지러 심부름 가면 늘 아버님은 수증기속에서 짠 하고 나타나셨다. 새벽 작업을 하신 노동의 피로는 간 곳이 없고 일하는 사람이 마땅히 짓는 그런 보람된 표정으로 나를 맞으셨다. 그리고 콩물과 순두부를 우리 식구가 먹을만큼 담아주셨다. 아 그 공장의 수증기 가득한 광경은 가히 장관이다. 


콩물은 물컹하고 간이 별로 되어 있지 않아 콩의 비릿한 냄새와 맛이 그대로 느껴져 처음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차츰 먹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부모님께서 베지밀보다 영양소가 더 많다는 말씀에 곧잘 먹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버님께 갔더니 콩물에 라면을 끓이셨다. 그 뒤로 콩물 한주전자 집으로 가져와 나도 라면을 끓여 보았다. 콩의 고소한 맛과 라면의 자극적인 맛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새로운 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콩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드시던 그 공장 방의 모습을 떠올린다. 


두부가 되기 전 단계의 순두부는 보이는 모양이 자연을 닮아있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각진 두부가 나오기전의 자연스런 혼돈의 상태를 생각하게 된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색감은 순수한 흰색 그대로다. 순두부 역시 처음에는 아무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순두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어머님께서 해주신 간장이 없으면 맛이 없었다. 어느 순간 고소한 맛을 느끼고 간수가 전해주는 간간한 맛도 같이 느끼게 되었다. 순수한 맛 하면 바로 떠올리는 순두부.  


몇 년 전 체지방 분석 결과지를 손에 들고 의아해했었다. 골격근의 양이 정상적인 성인의 2/3 정도 많다는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먹은 두부의 영향이 아닌지 추측해본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새롭게 탄생한다. 그래서 과거 어린 시절 먹었던 두부가 지금 내 몸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므로 아마도 두부나 순두부, 콩물을 좋아하던 식습관 속에서 꾸준히 몸이 만들어져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시장에서 사 온 순두부를 끓인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직 열만 가한다. 찬바람이 불어 그 겨울 고향집의 산골 바람을 상상하며 따끈하게 데워진 순두부를 먹는다. 간간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입안에서 살며시 허물어지는 두부의 질감까지. 김치나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려 했던 아내도 이 순백의 맛에 깊이 심취한다. 


어릴 적 먹었던 순두부와 30여 년 전 인천 연안부두 앞 포장마차에서 한 그릇 1200원에 팔던 그 순두부의 맛을 떠올린다. 한 끼 식사로 먹었던 양념 간이 되어있고 계란이 들어간 그 무수한 끼니의 순두부들도 같이 떠올린다. 아무래도 나는 이 순백의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순두부가 더 끌린다. 나의 미각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그 순백의 맛을. 그 속에 자유롭게 떠다니는 순백의 구름을 겹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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