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삼합(feat. 코/애/회/전/뽈살)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떨어뜨리고 최소한의 모임을 갖도록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면역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잘 먹을 것을 요구한다. 면역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장이 건강해야 한다. 좋은 음식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위로한다. 미각 수용체를 자극하여 뇌가 평안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음식이다. 먹는 동안 세상의 시름과 삶이 부여한 고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있겠는가? 홍어는 발효음식이어서 장 건강에 좋고 알칼리 음식이어서 산성을 중화시켜준다.
처음 내 입맛을 사로잡은 과메기는 미끼 음식에 불과했다. 홍어삼합을 주문하면 보통은 홍어회와 보쌈 되지고기, 김치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가게 뭔가 수상하다. 난생처음 맛보는 홍어 전이 등장한다. 밀가루 부침은 살짝만 입혔다. 국내산 홍어 재료가 많이 들어있고 약간 삭힌 맛이 깊고 그윽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알칼리 특유의 향이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찬이 이 정도인데 도대체 홍어는 어떤 맛일까? 홍어회의 부드러운 감촉과 싱싱한 무채 역시 찬으로 등장해 막걸리를 부르는 맛을 선사한다.
홍어 삼합에 맨 먼저 등장한 김치는 한마디로 파도와 같았다. 시원하고 대단한 기백에 대파가 어우러진 김치는 묘한 맛을 선사했다. 그 시원함은 일상의 스트레스와 잡념들을 한꺼번에 날릴 만큼 완벽한 진공상태에 빠지게 만들어준다. 홍어회가 등장하기 전에 조연들이 속속 식탁 위에 도착한다. 홍어 뽈살과 홍어 코, 그리고 차가운 푸딩 같은 느낌의 살짝 익힌 홍어애까지....
보쌈 돼지고기는 별도로 데워 먹을 수 있도록 채반에 나오고 이어서 홍어회가 나왔다. 홍어회는 각 부위별로 조금씩 손질해서 내어준신단다. 홍어회면 다 같은 홍어회인줄만 알았지 부위별로 다르다는 것도 오늘 알게 되었다. 삼합을 싸서 먹는 동안 아무런 잡념도 어른거리지 않는다.
음식을 즐기려면 역시 공부와 마찬가지로 아니 공부보다 더 노력하고 더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맛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성의와 의도 그리고 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셈을 치르고 받는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그 차원을 열어젖히는 사람은 나다. 내가 알아채야 한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훌륭한 음식이다. 산성과 알칼리의 균형을 잘 잡아주는 것 외에 홍어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홍어는 남도사람들이 옛 부터 즐겨먹던 수산물로 지금도 남도에서는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두엄더미에 파묻어 잘 삭힌 홍어의 오감을 관통하는 톡 쏘는 맛과 살과 뼈가 어우러진 오돌오돌한 식감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홍어는 삭힌 회를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유명하지만 무침, 찜, 애국, 전, 튀김 등 홍어요리는 다양하다. 예로부터 “일코 이 애 삼 날개 사살 오뼈”라고 해서 코 부위를 가장 맛있는 부위로 친다.
홍어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시대 정약전(丁若銓)이 쓴 『자산어보』에 가장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홍어는 생긴 모습이 마치 연(蓮) 잎 같다고 했고, 그 생김새와 습성, 먹는 방법, 낚시로 잡으면 수컷 등에 업혀서 짝짓기 하던 암컷까지 올라오는 모습까지 그림을 그려 보이듯 상세히 적어놓았다. 또 “홍어는 입춘 전후에야 살이 찌고 제 맛이 난다”라고 소개하고 “술독이 풀리고 복결병이 있는 사람은 썩은 홍어로 국을 끓여 마시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라고 언급한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홍어를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앞은 바다에 광범위하게 서식 분포하고 있고 흑산도나 인근 서해에서 잘 잡힌다. 자연 발효식품인 홍어는 사계절 먹어도 탈이 없다.(목포시청)
맛있는 가게를 발견하는 순간 그 가게는 나의 자산목록에 추가된다. 평생 나를 위해 가치를 발할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영역과 음식을 먹는 영역은 서로 다르고 개별적이다. 내 입맛은 보편을 지향하고 싶지 않다. 나의 미각 수용체들을 즐겁게 하고 내 뇌를 즐겁게 하고 내 장들을 살뜰히 보살펴서 내 면역 시스템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먹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 여전히 홍어들이 입안에서 뛰어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