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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15. 2022

추억을 부르는 국시와 수육

선배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 춥다. 아침에 바깥 온도를 체크하지 않고 외투 하나만 걸치고 나왔는데, 갑자기 선배님의 문자가 왔다. 나는 이런 방식의 소통을 좋아한다. 우리 언제 만나자고 약속하고 그날 만나는 것은 마치 무술에서 약속대련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불쑥 연락을 해서 서로 시간이 맞닿을 때 만나면 그 만남의 기쁨은 배가 된다. 시청 앞 광장 옆으로는 칼바람까지 불어서 한층 몸이 움츠러든다. 


선배님을 만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 누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것과 대부분 처음 뵈는 분들이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시각과 각자의 경험은 각자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누군가와 만나게 되면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 비교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각자의 가치가 투영된 삶은 그 자체로 존중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 타인의 경험을 듣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끊임없는 배움의 기회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은 음식이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 보다는 그 음식이 이어 줄 인연이 그 음식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다녀간 지 한 5년쯤 되는 가게인데 그 진면목을 알아볼 새 없이 막걸리에 대취했던 기억밖에 없는 곳으로 향한다. 오늘은 제대로 살펴보리라 다짐한다.


한참 끓던 그릇의 뚜껑을 열자 잘 익은 두툼한 무와 양파 그리고 마늘 등에 싸인 수육이 고개를 내민다. 겨울 무는 언제 어느 곳에서 먹어도 맛있다. 단맛이 입안으로 으스러지면서 몸을 완전히 녹여준다. 쫀득한 수육 한 점에 김치와 무생채를 싸서 먹는다. 소스는 이 맛들이 서로 앞서 나가지 못하도록 제지하면서 은근한 맛을 즐길 것을 권하는 것처럼 무심하게 입안에 퍼진다. 



양지와 사태를 우려낸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적당히 뿌려진 후춧가루와 얇게 썰어놓은 파는 국물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게 안내해준다. 막걸리와 이야기에 한 눈을 팔다 보니 한 그릇을 더 먹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오늘 처음 뵌 선배님과 두 분은 한 증권회사를 첫 직장으로 같이 다녔다. 이 무교동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노포 집들이 즐비하다. 그 노포 집들을 다니며 힘든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던 추억들을 되새기신다. 중심가에 나올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다. TV에서 자주 보던 주인공들 모습과 어딘가 닮아있는 추억이라서 그렇다. 그러다가 한 분은 방송국으로 다른 한 분은 언론 관련 공기업으로 이직을 하셔서 지금까지 세월을 흘려보내셨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얘기가 등장한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선배님들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첫째와 둘째가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막내만 남은 나를 엄청 부러워하신다. 그 순간 메인 메뉴가 등장한다. 국시는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은 아우라로 등장한다. 호박과 수육과 버섯 등이 잘 어울리면서 국시들은 몸을 살짝 감춘 채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보통의 국시는 면발이 전망 좋은 곳에서 등장하는데 어쩐지 운치 있고 멋진 느낌이다. 칼칼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에 다시 막걸리 한 잔을 먹다 보니 그만 국수를 다 못 먹었다. 다음에는 국수부터 한 그릇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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