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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15. 2022

육개장의 가르침

사돈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았다. 32년 생이시니 올해로 아흔두 살이 되셨다. 10여 년 전 보광동 가게를 지키고 계실 때 반갑게 뵈었고 그 직후 위암 수술을 하시고도 10여 년이 지났다. 모든 죽음은 안타깝고 애달프고 슬프다. 나와 관계의 가닥이 촘촘할수록 그 슬픔은 짙어지고 관계의 가닥이 몇 갈래 밖에 안되면 그 슬픔의 질감은 옅다. 하지만 인간이 한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는 그 명확한 사실을 부고를 통해서 깨닫게 되므로 애달프고 슬픈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어르신은 수술 이후로는 병을 앓지 않으셨고, 거동도 불편 없이 하시고 화장실도 스스로 해결하셨다고 한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바는 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품위 있게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낮잠을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니 자식들 입장에서도 어르신 입장에서도 서로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죽음을 맞으신 것이다.




몇 해 전 인공지능을 공부하시던 교수님과 만났을 때 인간의 일생에 관해 소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인간은 다른 외부적인 조건이 없이 자연 그대로 산다면 한 125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햇살이 내리비치는 텃마루에 걸터앉아 증손자에게 베개를 가져오게 한 다음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다만, 해로운 것 안 먹고 자연과 더불어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 장 칼망 할머니는 1875년 (조선 고종황제 즉위한 지 2년)에 태어나, 1997년(우리나라가 IMF를 맞던)에 돌아가셨다. 122세에 돌아가셨다. 80세에 펜싱을 시작하시고 90세에 부동산 매매를 했으며 110세까지 자전거를 타셨다고 한다. 어르신께서는 비록 장 칼망 할머니처럼 오래 장수하지는 않으셨지만, 사시는 동안 품위를 지키며 사셨고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례를 다 받으면서 가시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왠지 젊은 시절에는 상갓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밥을 먹고 가거나 아니면, 나중에 식사를 먹었다. 꺼림칙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들어가며 그건 나의 편견이고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상갓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고 심지어는 맛있기까지 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던 경직된 생각에서 탈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육개장 국물은 약간 매콤하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하다. 추운 날씨로 굳은 몸과 장례식장에 온 엄숙한 마음을 동시에 녹여준다. 


2016년 아버님 장례를 치를 때는 전혀 경황이 없었다. 오히려 1995년 장인어른 장례를 치를 때는 온갖 일을 척척 처리했는데 역시 부모님을 보내드린다는 것은 자식으로서는 정신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친구의 배려로 발인하던 날 30여 명 온 식구 식사로 육개장을 먹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그래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는 게 신기했다. 아버님을 보낸 슬픈 마음 너머로 몸에 밀려 들어오는 육개장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는 선생과도 같았다. 


오늘 육개장을 먹으며 상주들과 어르신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르신은 가셨지만 남은 식구들은 살아가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다. 상주들의 삶 속에 어르신의 죽음이 있고 어르신의 죽음 위에 상주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육개장은 그 경계선을 구분하지 말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코로나로 인해 퇴색되고 있음에 안타깝다. 특히 확진되어 돌아가시는 분들은 자식들이 상례를 치르지도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하고 보내드리는데, 비극도 이런 비극은 없다.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어 사람들이 도리를 다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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