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게 된 계기와 신체적 변화>
2019년 3월경 일상적 운동에 관한 대화 도중 직장선배로부터 계단 오르기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아파트 20층까지 총 100층을 오른다는 얘기였다. 예전부터 간간이 계단 오르기의 운동효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실천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그 선배님은 특히 생생하게 계단 오르기의 운동효과와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생생한 체험과 설명은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가장 큰 계기일 수 있다. 계단 오르기는 그동안 내가 했던 대부분의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게 해 주었다. 이 운동을 시작하기 1년 전 아내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7층 우리 집까지 계단을 오른다는 말과 함께 계단 오르기를 권했었다. 귀담아듣지 않은 나다.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1층에서 23층까지 올라갔다. 5 set를 하는 동안 호흡은 거칠었고 무릎과 허리도 아프고 다리에도 통증이 왔다. 일주일에 두세 번 겨우 할 정도로 처음에는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하면서 차츰 운동량을 늘렸다. 자주 7 set, 8 set, 그리고 가끔은 10 set, 12 set, 그리고 가을 어느 날 16 set를 했다. 성취감이 강하게 밀려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무릎 손상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요즘은 무리하지 않고 5 set에서 7 set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대신 일주일에 실시 회수를 주말 2회 필수를 포함하여 4-5회 정도로 늘렸다. 꾸준히 하되 무리하지 않는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자 무릎 통증도 훨씬 개선되었고 몸 전체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또 하나의 신체적 변화는 매년 3-4회 찾아오던 허리 통증이 지난 1년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물론 계단 오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나, 어쨌든 1987년 디스크 걸린 이후 처음 허리 안 아픈 상태로 온전히 1년을 보냈다. 감사한 마음이다. 2018년부터 전자담배를 피워왔는데 올해 1월 완전히 절연했고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하 1층부터 23층까지 오르다 보면 가장 고통스러운 게 숨이 차오르는 건데 그 이후 현재까지 숨이 별로 차지 않는다. 이 또한 매우 감사한 일이다.
<스트레스와 감정을 털어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곳>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정신적 변화를 겪게 된 것은 내 삶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신체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변화도 놀라웠다. 그날그날 생각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게 했던 수많은 생각의 끈들 중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쓸데없는 공상으로 인해 타인에 대해 오해하거나 상처 받을만한 말들에 갇혀있던 내게 계단 오르기는 자유로운 마음과 평화로운 시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층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 층은 평균 16계단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몸이 힘드니 잡다한 생각들이 올라갈수록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매번 잡다한 생각으로 출발하지만 계단을 오르고 층을 오르고 set를 반복하고 땀을 흘리면서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음을 문득문득 알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구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구상보다 어려운 것은 실천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기획과 실천은 구체적이고 디테일에 강해야 해 나갈 수 있다. 계단 오르기는 기획 과정에서 놓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그 일이 나와 타인의 삶에 줄 수 있는 의미에 관해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insight를 주었다. 그리고 계단 오르기는 실행 과정에서 넣거나 빼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었다. 2019년 한 해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나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합심하여 컨설팅회사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40여 명 되는 조직의 직무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무덥던 지난해 여름 6월 중순부터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던 8월 말까지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일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실행단계를 거쳐 최종 결과보고 단계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직무분석의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세세하게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덕분에 훌륭한 보고서를 같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계단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를 검토하는 일종의 idea factory임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곳에 대한 가치의 발견>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나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나는 나에 대한 사랑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단 오르기는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초라한 자신을 잊게 만들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회수를 거듭할수록 매번 힘들었고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대견한 나를 매번 만나게 되었다. 한 시간 안에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의 강도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비교하지 않는 마음이 점점 깊어지면서 내 내면의 삶의 질도 상승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타인에 대한 자세도 변화했다. 타인은 나와의 비교대상이 아니라 나를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거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계단을 오르며 타인과 나누었던 대화와 메시지들을 떠올린다. 그 의미를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나에 대한 메시지로 되돌아왔다. 타인의 메시지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교하지 않고 얻는 자유스러움,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평화의 느낌과 감정은 달콤했다.
이제는 그동안 내가 밝고 올라간 계단과 오늘 내가 오르는 계단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어제와 달라진 내 신체변화와 매번 오르면서 내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매일매일 육체적인 수양과 정신적인 수양을 같이 한다. 몸과 마음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나를 어제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몸은 더 단단해지고 마음의 지평은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진다. 창문에 가끔 비친 내 종아리는 아주 사랑스럽다. 아침에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 내 허벅지에 선명하게 새겨진 근육 선들은 소박한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아파트 가격이 사람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매일매일 아파트 가격과 시세가 뉴스에 등장한다. 그러나, 아파트의 효용성을 말하고 그 내재적 가치와 일상의 삶과의 연관성을 얘기하는 뉴스는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나는 계단 오르기를 통해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내 눈에는 아파트들이 코로나로 운동과 단절과 연결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피로감을 덜어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통해 건강해지고 건강한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곳이 될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곳, 언제든 마음먹으면 시작하고 언제든 마음먹으면 그만둘 수 있는 곳,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운동할 수 있는 곳. 계단 오르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