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버님 돌아가신 뒤 어머님은 고향집에서 홀로 지내셨다. 경로당에서 친구분들과 식사를 하시기도 했지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시면서 어느덧 식사를 간단히 누룽지로 해결하시거나 상추에 된장을 올려 풋고추와 드시던 날들이 많았다. 건강이 걱정되어 서울로 모시고 올라와 2018년 1월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으셨다. 77세 되시던 해였다. 결과는 생각보다 나빴다. 특히 혈액 건강이 매우 안 좋아 당장 수혈을 해야 할 정도라고 진단을 받으셨다. 혈액 영양상태도 별로 안 좋지만 특히 산소결핍이 두드러진다는 진단이었다. 집에서 같이 모신 4주 동안 아내가 유튜브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이 비트 주스(색깔이 비트 색이어서)를 매일 아침 해드렸다.
그리고 식사를 제대로 하시도록 했고, 고향집으로 내려가신 뒤로도 비트 주스와 영양가 있는 식사를 드시도록 안내해드렸다. 두 달 뒤 보건소에서 혈액 검사를 받으셨는데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굿뉴스를 전해주셨다. 그 효과에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동생들과 가족들 모두 놀랐다. 어머님의 건강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역시 어머님과 같이 비트 주스를 먹기 시작했다. 밥이라는 단어에는 쌀과 보리와 밀가루만이 포함되지 않는다. 한 끼니를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은 밥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다. 비트 주스 한 잔이 우리 가족에게는 아침밥이 되었다.
비트와 당근과 브로콜리는 다량으로 미리 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토마토는 뜨거운 물에 담가 어느 정도 익도록 하고 사과와 레몬은 그대로 넣어서 물과 함께 믹서기에 넣고 간다. 매일 이렇게 준비하기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늘 비트 주스를 준비해주는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마신다. 여섯 가지 채소와 과일이 몸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먹고 난 뒤의 위장 상태와 장의 반응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매일매일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발끝에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 허리로 서서히 스캔한다. 그리고 손끝에서 팔목, 팔꿈치, 어깨로 스캔한다. 이렇게 온몸을 스캔하고 두 팔을 돌려보고 다리를 접어 양쪽으로 서서히 비틀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비트 주스는 몸이 깨어나는 일을 돕는 느낌이다. 한 숟갈씩 입안에 넣으면 그 여섯 가지 식재료들이 알아서 몸안으로 스며들어가며 몸의 세포들을 깨우는 것 같다. 식감이 처음부터 좋지 않았지만 역시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서 적응해간다.
처음에는 아내와 나만 이 주스를 마셨다. 아들이 보디빌딩을 하면서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합류했다. 두 딸들에게는 잔소리를 했지만 워낙 육류를 좋아하고 채소를 멀리하기에 더 이상은 권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변화가 생겼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제 때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권유했고 바로 효과를 확인한 두 딸이 합류해 지금은 온 가족이 매일 아침밥으로 비트 주스를 마신다.
다섯 식구가 같이 하는 한 끼니 여행은 서로 먹는 시점도 다르고 먹는 양도 다르고 먹는 느낌도 다르지만 가족공동체 안에서 뭔가를 같이 공유하고 있다는 그 지점 안에서 안도와 평화로운 감정을 느낀다.
비트 주스를 먹으며 비트,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레몬, 사과가 자란 대지와 강수량과 일조량을 상상한다. 각각에는 수많은 성장과정의 정보가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작물들을 수확하던 분들의 노력과 노고를 떠올린다. 그리고 거기에도 수많은 유통과정의 정보가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물이 자라도록 했던 분들의 선의와 유통시키는 분들의 선의, 그리고 가게를 지키며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지키고 계신 분들의 선의를 생각한다. 한 끼니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에게로 오는 긴 여행이다. 내가 그 여행의 종착지점에서 처음과 끝을 생각해보는 것은 한 끼니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분 좋은 여행이다. 졸음이 살짝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