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음식과 일상

by 새로나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을 먹는 일상 의식>


하루 세 번 혹은 두 번 혹은 한번, 한 끼니를 먹기 직전의 진공상태를 조용히 음미한다. 그 음식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잠시 아주 잠시 잠깐 순간의 고요를 느끼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요즘 깨닫고 있는 일상 의식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는 행위다. 매 순간 다른 생명을 통해 나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자각은 나를 경건하게 만든다. 그 생명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나는 생명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일상 의식의 한 부분인 음식이 나왔을 때 그것이 국물이라면 한 술, 반찬이나 다른 음식이라면 한 젓가락인데, 한 술과 한 점을 음미하는 지점에서 조용히 나만의 의식을 거행한다. 그 생명들을 생각하며.


모든 생명은 살아있는 동안 아름답다. 그 생명들이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의 삶을 유지하는데 내어주는 것 자체도 가치 있고 아름답다. 물론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나, 나의 관점에서 보면 아름답다. 음식을 대하는 매 순간 생명의 희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런 나도 비록 먹는 순간에 드는 미안한 마음을 상쇄할만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지점이야말로 일상 의식의 의미가 밤하늘의 별들처럼 무수히 반짝이는 곳이다. 오늘도 나는 그 지점을 향한다.


<새로운 음식을 만나는 소박한 모험>


오늘 나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수많은 선택지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막상 가고자 하면 고민이 된다. 대개 선택은 내게 익숙한 음식으로 향한다. 만약 새로운 메뉴를 추천받는다면 꼬치꼬치 물어보고 인터넷과 블로그를 열심히 뒤져 후기를 읽어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음식을 만난다는 것은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아주 작지만 은근히 긴장감이 도는 모험이다. 그 모험의 대가는 때로 희열로 다가올 수도 있고 때로는 투자한 기회비용에 대한 실망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나는 음식에 관한 수많은 모험담을 들어왔다. 음식에 관한 나의 기호와 취향을 만들어온 것은 나만의 모험이 아니라 수많은 타인들의 간접경험이 녹아서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늘 말썽만 피우던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 돌연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장롱 서랍 속에 넣어뒀던 부러진 칼을 꺼낸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다. 그 칼을 봇짐에 넣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 도착했는데, 곡소리가 들리길래 무슨 소린가 물어보니, 언덕 너머 괴물이 살고 있는데 매달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바치는데 그날이란다. 그러자, 이 청년이 내가 가서 괴물을 무찌르겠다고 하고 부러진 칼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 모두 비웃는 가운데 언덕 너머로 간 청년은 마침내 괴물을 물리치고 처녀를 구해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영웅은 그렇게 탄생한다. 한 마을이 처한 위기 상황을 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전파한다. 겨우 한 끼의 식사를 통해 얼마든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깨달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일상 속에서 각자의 모험담이 서로의 삶에 에너지가 되어줄 수 있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의 한 끼니 추억>


음식은 이질적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중요한 수단이자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의 한 끼 식사는 그것 자체가 힐링이자 보약이다. Micro Biome의 세계를 접한 뒤로 음식이 장에 미치는 영향과 그 장이 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로 인해 알게 된 몸의 생태계 전반에 대해 생각해본다. 음식은 그만큼 우리 몸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마음 맞는 사람과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 쌓인 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러므로 마음 맞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몸과 정신 모두에게 중요한 건강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서로 나누고 주고받는 것이다.


혼자 한 끼니 여행하는 것도 운치 있지만 그래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여행하는 것이 좋다. 살아온 날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인의 삶에 비춰 자신을 바라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좋고 가끔 만나는 사람들도 좋다. 음식을 먹으러 장소를 이동해서 가는 동안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 새로운 음식이라면 그와 유사한 식재료를 만난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생각 자체가 음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조금은 진지하게 그리고 조금은 즐겁게 만들어준다. 가는 동안 사람들과 그 음식을 주제로 얘기하는 건 더더욱 즐겁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통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추억을 쌓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교하지 않는 자유, 비교할 수 없는 행복>


어릴 적에는 성적으로 비교하고, 커서는 대학과 직장과 연봉과 부동산으로 비교한다. 나는 당연히 너와 다르다. 나도 존중 받아야 하고 너도 존중 받아야 한다.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람은 각기 태어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다르다. 그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제각각 다르다. 삶의 사명이 다르며 삶을 마치는 과정도 모두 다르다.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음식점도 나는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평양냉면과 막국수와 칼국수는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같은 듯하지만 다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비결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교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매일매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우리 일상의 삶의 상당 부분은 가격에 저당 잡혀있다. 부동산과 임대료로 연일 신문들과 방송들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프레임에 갇혀 살기는 싫다. 매일매일 스포츠 중계하듯 얼마가 오르고 얼마가 내리고 얼마를 주니 못 주니 하는 시시껄렁한 헛소리에 내 소중한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삶의 가치는 가격에 있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타인들과 자신이 만든 가치를 공유하고 지키면서 내공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장사가 안되고 손님이 드물어도 그들은 가게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린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가치 있는 곳이다. 그 가치를 발견하면 나의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진다. 가격에 매몰되면 절대 볼 수 없는 가치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즐겁다.


<맛집은 가까운 곳 어디에도 있다>


맛집이라는 단어가 나는 어색하다. 맛은 개별적 영역에 속한다. 아무리 보편적 언어와 동영상과 레시피를 보여주는 과정이 지속되어도 맛을 느끼는 사람은 오직 나다. 각자의 맛집은 각자에게 속한다. 맛집은 어디에도 있다. 내 발길이 닿고 내가 마음을 주고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맛집이 될 수 있다. 맛집이라는 단어는 아주 매력적인 단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맛집의 대상이 되는 가게는 주목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가게는 주목을 받지 못한다. 맛집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은 우리를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고 있다. 맛집에 관한 뒷거래는 아주 오래된 전설이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맛집이고 아니 고를 평가하는 자유는 그들의 것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그들의 맛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영역이다. 그 영역을 몇몇 사람들이 독점할 권한을 우리는 부여해 준바 없으며, 부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맛집은 어디에도 있다. 그 맛집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이미 <식객>이라는 영화에서 혹은 허영만 작가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것은 배고픔이다.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잔과 배고플 때 먹는 한 끼니는 누구에게든 그 순간만큼은 전부다. 그러니 맛집은 어디에도 있다. 식재료가 음식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구보다도 그 식재료에 대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식재료를 다루는 법에서 출발하여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입만을 매 순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맛집은 어디에도 있다. 내가 모를 뿐이다. 어떠한 편견과 선입견도 갖지 않으면 어디에서든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어느 유대 랍비는 꿈속에서 폴란드 국경 근처 다리 밑 어딘가에 보물이 있다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향한다. 그러나 국경수비대장에게 붙잡히고 마는데, 수비대장 역시 꿈 얘기를 한다. 바로 유대 랍비의 집 뒤뜰을 묘사한다. 풀려난 랍비가 집으로 돌아와 수비대장의 말대로 뒤뜰을 파보니 거기서 보물이 나왔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발견된다는 얘기다. 일상의 행복, 인생의 행복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있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한 끼니의 소중함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다. 때로는 몇 년, 때로는 수십 년을 식재료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오신 분들이다. 경제위기나 코로나로 인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도 쌓인 내공으로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분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들이 지역사회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나의 자산목록에 포함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