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태 유목민이 되어 소중한 인연을 만들다

-먹태와 짝태

by 새로나무

<Plan A - 촉촉하고 부드러운 먹태를 만나다>


그동안은 채 썰어놓은 누렇게 구워 마른 먹태만 먹어왔었다. 사장님이 하얀 한지에 쌓인 먹태를 꺼내놓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거침없는 장인의 손길로 먹태의 껍질을 두세 번 만에 벗기신다. 그리고 손으로 살을 쭉쭉 찢어서 접시 위에 올려놓으시고 소스를 젓가락으로 힘차게 돌려 고루 섞이게 한 다음 방금 찢은 먹태 한 조각을 소스 위에 올려놓으신다. 생맥주를 한 모금 먹고 먹태를 먹었는데 이제껏 먹어본 먹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먹태는 씹는 음식이라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데 이 먹태는 살얼음이 녹듯이 스르르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먹태를 한창 먹고 있을 무렵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먹태 껍질이 등장한다. 껍질의 고소한 맛과 먹태 살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지면 맥주 도둑이 된다. 여기에 날치알이 들어간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시는데 이 걸로 저녁 한 끼니가 해결되었다. 그해 여름 우리 부부는 매주 서너 번 저녁식사를 겸해 이 가게를 들렀다.


그렇게 해서 이 가게는 후배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들렀다. 그리고 두세 마리씩 포장을 해서 갔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함이 매력이었을 것이다. 그해 여름과 2016년 여름, 그리고 2017년 가게 문을 닫던 8월까지 거의 일주일에 2-3번은 갔었다. 때로는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온 적도 꽤 자주 겪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기도 하고 좌석도 많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먹태가 맛있었기 때문이리라.


자주 찾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장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12시면 반드시 가게문을 닫는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장님도 장사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므로 12시 이후에는 자신도 한잔 해야겠기 때문이란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주변의 압력에 대해서도 가끔 하소연하셨다. 주변의 가게들이 수시로 민원을 넣고 집주인은 임대료를 매년 높이며 압박한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잘되면 응원을 하는 게 아니라 잘 안되도록 마음을 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밀려온다고 하셨다.


2017년 여름 어느 날 오랜만에 가게를 들렀는데 내일 그만둔다고 하셨다. 당분간 일본 동경으로 가서 쉬면서 다시 좀 더 괜찮은 곳에 가게를 낼 구상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날 마침 같이 간 친구와 후배들과 함께 먹태를 마음껏 즐기고 포장도 했다. 그리고 뜻밖의 선물을 주셨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먹태 머리를 한 망 정도 주셨다. 워낙 자주 가다 보니 그런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1년 가까이 먹태 머리를 우려내었다. 감사한 일이다. 다시 가게를 오픈하게 되면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고 전화번호도 받았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2018년 3월 동경 대사관에 근무 중인 친구를 만나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우연히도 하네다 공항에서 그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서로 많이 놀랐다. 그 뒤로 가끔 연락을 드리는데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걸 보면 장사하면서 지쳐서 아예 오픈을 안 하시나 보다고 추측한다. 하나 후회되는 것은 그때 어떤 레시피로 숙성시켰는지 제대로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그랬으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 숙제로 남겨둔다. 꼭 내 손으로 만들어 보리라고.


< Plan B - 정성스럽게 구운 먹태와 대구 노가리>

먹태에 대한 아쉬움은 비슷한 음식을 만드는 가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집 근처에서 적당한 가게를 발견했다. 두 부부가 운영하시는 가게인데, 늘 정성스럽게 먹태를 구워주셔서 그런대로 아쉬움을 덜 수 있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먹태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소스에 나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게 된 것이 대구 노가리다. 아 이 노가리는 포항에서 맛본 만큼의 노가리 맛은 아니지만, 쫀득한 촉촉함이 살아있는 맛이다. 역시 정성껏 구워내 오신다. 김에 먹태 한 점, 먹태 껍질 한 점, 대구 노가리 한 점, 땅콩 한 알을 넣고 시대의 트렌드처럼 되어버린 융합이란 단어를 빌어 버무리면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먹태에 집착하는 이유는 생맥주 때문이다. 그해 여름은 개인적으로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다. 먹태와 생맥주는 내 팍팍한 삶을 위로하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집들은 왜 그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나버리는 걸까? 임대계약이 종료되는 8월 말 문을 닫는다고 하신다. 더 자주 가게를 들렀고, 점점 더 우리 부부와 사장님 부부는 친해졌다. 그해 월드컵 멕시코전을 같이 보자는 약속을 하고, 우리 네 사람은 먹태와 노가리와 생맥주와 함께 그 밤을 멋진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시 가게를 운영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추억 속으로 또 한 가게가 사라졌다.


< Plan C - 계단 오른 뒤의 갈증을 채워주는 그 심해의 짝태>


어느새 짝태 유목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맛있는 먹태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소박하고 아담한 가게, 느낌도 좋고 조용한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이 즈음 우리는 계단 오르기 운동에 한참 취미를 붙이는 중이었다. 짝태와 생맥주는 계단을 오르는 우리에게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어주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출장을 유럽으로 거의 매년 다녔는데 프랑스의 니스 해변과 프랑크푸르트의 골목, 암스테르담의 강변과 로잔의 거리, 취리히 역에서 먹었던 생맥주들은 저기 추억 속에서 맥주 맛을 선사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는 나는 그 그리움으로 안타까워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유럽의 맥주들이 생각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산 생맥주 맛이 좋아졌다. 아니 생맥주 맛이 좋은 집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나는 한국이 맥주 선진국 대열에 한시바삐 올라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일상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 위로 속에서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를 찾기 바란다. 이왕이면 밀생 맥주도 만들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가열된 돌판에 를 짝태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굽는 장면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 기다리는 즐거움이 추가되었다. 빈 접시에 물을 담는다. 먹태를 그 물에 적셔둔다. 적당히 구워진 데다 물기를 머금은 짝태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힌다. 최상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먹는 사람의 몫이다. 김 한 장에 짝태 한 점, 짝태 껍데기 한 점, 추억의 쫀드기 한 점, 계란찜 약간, 마요네즈가 버무려진 청양고추 슬라이스 한 조각, 매운 소스 약간에 옅은 간장 베이스 소스에 살짝 찍어 준비해 둔 뒤 시원하게 생맥주 한 모금하고 입안에 넣는다. 입안에서 자연스러운 융합이 일어나는 그 순간 나는 짝태 맛이라는 바다의 한가운데 심해에 깊이 빠져있다. 동해안 넓고 깊은 그 바닷속에서 먼 훗날 짝태가 될 명태와 말없이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한다.


*먹태 : 황태를 만드는 과정에 따스한 날씨로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먹태 또는 흑태라 부른다. 반대로 추운 날씨로 색이 하얗게 변한 것을 백태라 부른다.

**짝태 : (북한어) 명태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빼고 소금에 넓적하게 말린 것.<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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