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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Feb 22. 2022

메밀싹에 묻어나는 봄내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메밀 막국수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할 때였다. 평양냉면과 메밀 막국수와 칼국수의 맛이 서로 같은 듯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 후 잘 구분이 되지 않아 헷갈리기도 했었다. 이곳의 메밀 막국수 맛은 여태껏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맛을 나에게 선사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경험은 혀끝에 혹은 입안의 미각 수용체에 남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오래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뒤로 춘천을 갈 일이 있으면 꼭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늘 선배와 친구와 같이 방문했다. 두 사람 다 여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우선 녹두전을 주문한다. 이 메뉴 역시 이 가게 하면 떠올리는 메뉴다. 가성비가 대단히 높은 음식이다.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여사장님 혼자 일 하시는데, 손이 굉장히 빠르시다. 부침개도 부치고 막국수도 만들어 내놓고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신다. 오늘은 비빔 막국수를 주문했다. 물막국수를 시키면 왠지 비빔 막국수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늘 겪는 갈등이다. 동치미 국물이 나오니 언제든 물막국수로 전환할 수 있다.

메밀전 두 장을 서비스로 내놓으신다. 춘천 생막걸리는 맛이 깔끔하고 달지 않으면서도 개운한 뒷맛을 남긴다. 막걸리는 그 지역 막걸리가 최고다. 그 지역에서 나는 물로 빚은 막걸리니까. 어디를 가건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것이, 그리고 그 지역에서 나오는 물로 빚은 막걸리를 먹는 것을 제일 좋은 경험으로 삼는다. 어느 지역을 방문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를 내가 경험하는 것이다. 그 지역의 문화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앞에서 나를 맞아 주는 것은 역시 식문화다. 식문화를 탐험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 왔던 지역 사람들의 식재료를 대하는 노하우와 그 음식을 만들어 낸 이유, 노력과 정성을 한 번에 내가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지역 막걸리를 좋아한다.

사장님의 권유대로 메밀 전에 무채 무침을 싸서 먹으니 마치 메밀전병을 먹는 느낌이다. 봉평 메밀축제 시장에서 맛본 메밀전병은 상큼한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그 맛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동치미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물끄러미 동치미 국물을 들여다본다. 잠시 그 깊이를 가늠해본다. 저 재료들이 거쳐왔을 여정과 숙성된 시간, 그리고 주인장의 노력의 깊이가 느껴진다. 

처음 이 녹두전을 접했을 때는 두 장에 오천 원이었다. 가성비 갑이다. 녹두전은 반죽이 너무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살짝 들어간 고기와 채소들이 적당히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약속대련을 하는 것처럼 준비된 맛을 선사한다. 녹두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니 벌써 배가 그득하다. 드디어 메밀막국수가 등장하신다. 

메밀싹은 봄 내음을 안고 여기 들어와 있다. 양념장은 자극적이지 않다. 아로니아 액과 식초, 겨자를 곁들이니 먹음직한 색깔로 디자인된다. 그냥 먹기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메밀 100%의 순메밀 막국수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쫀득한 질감을 유지하고 있다. 메밀 반죽을 할 때 그 쫀득한 질감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궁금하다. 여쭈어보지 않으련다. 맛있게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상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같이 간 선배와 친구 역시 이구동성으로 이제까지 먹어본 막국수 중에 단연 최고라고 얘기를 해 줘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두 분 모두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이기에 소개한 나는 더 기분이 좋다. 


3분의 1 정도를 남겨 놓고 동치미 국물을 부었다. 지금부터는 양념이 들어간 물 막국수를 먹는다. 봄이 아직은 저 멀리 있지만 봄기운이 스멀거리는 가운데, 나는 봄기운을 보았고 봄기운 한 그릇을 먹은 느낌이다. 동치미 국물과 양념과 메밀싹이 엉켜있는 나머지를 후루룩 마시고 나니, 기나긴 겨울밤을 훌쩍 떠나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깔끔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밖으로 나와 허름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게 처마 밑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봄기운을 잔뜩 머금고 나를 하늘 높이 데려다준다. 오늘 하루 나들이는 지난겨울 동안 견딘 나에 대한 보상이다. 흠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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