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그 지역 막걸리를 좋아한다.
사장님의 권유대로 메밀 전에 무채 무침을 싸서 먹으니 마치 메밀전병을 먹는 느낌이다. 봉평 메밀축제 시장에서 맛본 메밀전병은 상큼한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그 맛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동치미 국물은 맑고 시원하다. 물끄러미 동치미 국물을 들여다본다. 잠시 그 깊이를 가늠해본다. 저 재료들이 거쳐왔을 여정과 숙성된 시간, 그리고 주인장의 노력의 깊이가 느껴진다.
처음 이 녹두전을 접했을 때는 두 장에 오천 원이었다. 가성비 갑이다. 녹두전은 반죽이 너무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살짝 들어간 고기와 채소들이 적당히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약속대련을 하는 것처럼 준비된 맛을 선사한다. 녹두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니 벌써 배가 그득하다. 드디어 메밀막국수가 등장하신다.
메밀싹은 봄 내음을 안고 여기 들어와 있다. 양념장은 자극적이지 않다. 아로니아 액과 식초, 겨자를 곁들이니 먹음직한 색깔로 디자인된다. 그냥 먹기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메밀 100%의 순메밀 막국수는 쉽게 끊어지지 않고 쫀득한 질감을 유지하고 있다. 메밀 반죽을 할 때 그 쫀득한 질감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궁금하다. 여쭈어보지 않으련다. 맛있게 먹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상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같이 간 선배와 친구 역시 이구동성으로 이제까지 먹어본 막국수 중에 단연 최고라고 얘기를 해 줘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두 분 모두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이기에 소개한 나는 더 기분이 좋다.
3분의 1 정도를 남겨 놓고 동치미 국물을 부었다. 지금부터는 양념이 들어간 물 막국수를 먹는다. 봄이 아직은 저 멀리 있지만 봄기운이 스멀거리는 가운데, 나는 봄기운을 보았고 봄기운 한 그릇을 먹은 느낌이다. 동치미 국물과 양념과 메밀싹이 엉켜있는 나머지를 후루룩 마시고 나니, 기나긴 겨울밤을 훌쩍 떠나보낸 것 같은 느낌이다. 깔끔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밖으로 나와 허름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게 처마 밑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봄기운을 잔뜩 머금고 나를 하늘 높이 데려다준다. 오늘 하루 나들이는 지난겨울 동안 견딘 나에 대한 보상이다. 흠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