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서 중심으로 중심에서 로컬로
오늘 선배들과 같이 만나기로 한 식당은 내가 그냥 인터넷으로 살펴보고 예약을 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처음 가보는 식당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늘 공존한다. 사진으로만 볼 때는 깔끔해 보였다. 깍두기와 마늘을 갈아 넣은 그릇이 먼저 나왔다. 나는 식재료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음식점에 한 표를 더 드리고 싶다. 식재료를 사는 게 돈과 연결되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넉넉하게 식재료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왠지 음식 맛이 더 있게 느껴지고 더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음식은 곧 손 맛이자 인심이다.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넉넉함은 음식의 맛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준다.
해장국이 등장했다. 파가 수북이 올려져 있어 마늘에 이어 또 한 번 먹기도 전에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파와 마늘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껏 주는 집을 좋아한다. 숟가락으로 조금씩 헤집어 본다. 안에 빨간 다진 양념 양념이 보이고 그리고 선지와 콩나물, 이어서 우거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달리 이 해장국은 네 가지 얼굴을 서서히 나에게 보여주었다. 신선한 선지는 아늑했으며, 양념은 약간 자극적이어서 온 몸이 재빨리 깨어나는 느낌이다. 해장국은 양념이 있는 해장국과 담백한 해장국으로 나뉜다. 자극적인 것은 자극적인 대로, 담백한 것은 담백한 대로 좋다. 나는 그 둘 다 좋아한다.
입구 한편에 반주 한잔씩 하라고 주인장이 쏜다는 손글씨 종이 바로 밑 냉장 통에 담긴 춘천 생막걸리를 가져와 마신다. 해장국 식재료의 넉넉함에 더해 막걸리 인심도 넉넉하다. 아침부터 인심에 파묻혀 막걸리 몇 잔과 해장국을 같이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잔을 부딪히는 순간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 어우러지는 순간의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맘 편한 사람들과는 어디라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어 더 즐겁고 돈독해진다.
작년 11월 제주 방문 시 로컬 문화 창조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상의 문화를 혁신하고 이를 다시 수도권과 내륙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해장국 한 그릇을 만들며 지난 세월 동안 제주에서 다져왔을 수많은 노력들과 이 음식을 육지로 전파하여 사람들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있음을 느꼈다. 중심은 더 이상 중심으로서의 권력을 지역에 강요하지 않고, 지역은 지역만의 문화를 중심으로 퍼뜨리고, 그래서 어디건 모두 로컬이고 어디건 모두 중심인 그런 세상을 해장국 그릇 안에서 꿈꿔본다.
밖은 아직 영하 8도지만, 해장국 한 그릇으로 어느새 영상 포근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