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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30. 2022

물이냐 비빔이냐

아주 오래전부터 한정된 자원으로 뭔가를 해야하는 선택 상황과 자주 만났다. 한창 전자오락이 유행하던 중학교 때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은 갤러그와 제비우스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언제나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쪽이 더 나아 보이는 후회를 하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화요릿집에 가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늘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짜장이나 짬뽕을 선택하면 늘 후회를 한다. 아 오늘은 짜장이 아니라 짬뽕이었는데, 아 오늘은 짬뽕이 아니라 짜장이 었는데.... 가수 김광석은 <노래 이야기, 인생 이야기> 라이브 앨범에서 그 갈등관계를 재미있게 얘기했다. 




삶이 단조롭다거나 일상이 지루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선택의 순간이 나를 설레게 하고 긴장하게 하며,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이끈다. 이 사소한 선택의 순간순간을 통해 나는 일상을 사는 또 하나의 재미를 만끽한다. 오늘 처음 들른 막국수 집에서 나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시원한 국물을 들이켜며, 동치미 육수와 메밀의 조화를 맛볼 것이냐? 아니면 양념에 비벼진 메밀의 고소함을 맛볼 것이냐? 오늘은 비빔막국수를 선택한다. 비빔막국수를 먹다가 물을 부으면 물 막국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동치미 국물은 더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메밀 막국수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메밀에 포함된 루테인 성분 그게 가져올 면역력 효과? 아무래도 동치미 국물과 메밀 툭툭 끊어지는 메밀 식감에 있지 않을까? 그동안 메밀 막국수를 많이도 먹어 봤다 새로운 가게를 찾는 모험을 나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체인점이라 메밀 막국수 퀄리티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른 체인점들을 또 다녀 받기 때문에 평균 이상은 되리라고 짐작을 했었다. 장원 막국수나 고기리 막국수처럼 그런 뭐 표준화된 맛이 있을 거라고 혹은 평균 이상의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가게는 아주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돈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 눈에 띄는 첫 구절은 주문하면 바로 면을 뽑는다는 그래서 신성한 메밀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는 문구가 나를 은근히 자극했다.

천 원짜리 보리밥이 먼저 등장한다. 보리밥 알갱이가 탱글탱글하다. 그 위에 올려진 파릇파릇한 시래기는 오래 묵은 시래기와는 달리 촉촉한 식감을 선사한다. 햇빛과 동화작용으로 입안에 부드럽게 착 감기는 시래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고추장을 살짝만 넣고 비빈다. 밑에 깔린 들기름 향기가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든다. 보리쌀 한 점 한 점이 입안에서 으깨어지며 시래기와 배춧잎과 자연스럽게 섞인다. 동치미 김치의 은은한 시큼함이 보리밥의 심심함을 덜어준다. 동치미 김치를 세 접시 먹었다. 아주 솜씨 좋은 맛이다. 김치에 딸려온 국물 바닥에 살짝 고인 국물은 은은한 시큼함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털레기 수제비는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 오늘은 메밀 막국수 때문에 포기한다. 아마도 대표 메뉴인 거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막국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동치미 육수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아 역시 잔잔한 시원함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툭툭 끊어지는 메밀의 고소한 식감에 조금씩 조금씩 몰입하게 된다. 독특한 양념장 맛은 처음에는 약간 자극적이었으나, 먹을수록 고소함으로 연결된다. 들기름과 깨,  김가루 이런 조합들이 살짝 얹어진 동치미 국물과 섞여서 입안을 자극한다. 동치미 육수를 부으려다가 그냥 따로 먹었다. 오늘의 결론 물막국수는 물막국수고 비빔 막국수는 비빔 막국수다. 


음식 맛에 대한 표현은 제한적이다. 아삭하다, 고소하다, 탱글탱글하다, 시원하다.... 상투적인 표현은 지루하고 관성적이다. 그런데 상투적인 표현이 주는 안정감을 생각하면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곳에 맛이 자리하고 있기에 어떻게 표현해도 말은 가닿을 수 없다. 맛의 근처에서 표류하는 말을 굳이 끌고 올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맛은 맛의 영역에서 표현은 표현의 영역에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침묵의 영역 혹은 미소의 영역 혹은 탄성을 지르는 영역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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