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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30. 2022

밥이 맛있는 곳

이사를 하는 날은 왠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어야할 것 같은데, 시간을 이리 저리 재어보니 겨우 30분 정도 남는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내 차에 실린 침대 메트리스와 몇 가지 짐들이 집에서 옮겨 갈 것의 전부다. 차를 세워두고 밥집을 찾았다. 골목 안에 김밥 집은 자리가 없어서 잠시 두리번거리는데 어 저기 눈에 확 와 닿는 간판 밥이맛있는집 그리고 큰 글자만 보면 밥맛이라 읽힌다. 


산업사회, 대량 생산 사회에서 사람을 대표하는 간판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전히 간판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로 사용된다. 물론 갈수록 그 흐름은 둔화될 것이다. 간판을 뛰어넘는 역량으로 새로운 가치와 성과를 만들어가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잡아 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간판중시 패러다임은 더 강렬하게 자리를 지키려고 할 것이고 그래서 이 패러다임 간의 부딪침은 필연적이다. 


가게에서 간판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런 흐름과 같다. 음식점은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음식점으로 향하게 만드는 데도 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즘은 간판이 시선을 압도하기 보다는 뭔가 이끄는 역할을 한다. 간판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가게의 인테리어, 주인장의 태도와 자세, 무엇보다 음식의 질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낯선 곳에서 음식을 먹으려 치면 그래도 간판과 가게 안의 분위기를 보게 된다. 



순두부찌개, 콩비지 찌개와 청국장 이렇게 세 개를 주문해서 같이 나눠 먹기로 했다  여러가지 메뉴를 시켜 같이 나눠 먹는 습관은 밥 한끼 먹는 즐거움을 더해주기에 좋아한다. 코로나 이후에는 서로 나눠먹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가족과는 여전히 이렇게 나눠 먹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 세가지 메뉴는 아주 오랫동안 즐겨먹는 음식이어서 역시 이 음식들과 연관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한 겨울 연탄불로 덮힌 방은 아랫못과 윗목으로 나뉜다. 아랫목 따뜻한 곳에 비지를 담은 큰 그릇에 이불을 덮어 비지를 띄운다. 그렇게 띄운 비지를 김치를 넣고 콩비지 찌개를 해주셨다. 겨울에 산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은 온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콩비지 찌개는 얼어붙은 몸을 녹여준다. 어머님은 늘 싱겁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밥은 적당히 먹고 콩비지로 배를 채울 때가 많았다. 



묵은지를 넣어 끓인 콩비지 찌개는 비지가 약간 적은 아쉬움을 김치가 대신해준다. 김치는 잘 익어서 부드럽게 입안에 들어오고 비지가 그 김치를 감싼다. 국물은 걸쭉하지 않아 갈증도 풀어주고 몸도 녹이고 고픈 배도 채워준다. 내 입맛에 딱 맞는 간이어서 계속 떠먹게 된다. 순두부 역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청국장도 구수하고. 이 동네에 딸 아이처럼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그들에게 매 끼니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아 아늑하다. 주말에 딸 아이와 오게 되면 저 한상차림도 한번 먹어보리라. 


정갈하고 깔끔한 백반. 


https://blog.naver.com/golza/22260755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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