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Jan 30. 2022

시골맛 칼만두의 품격


#1. 시골맛

농수산업을 생활의 터전을 이루며 주변의 자연환경이 보존되어 있는 사람이 비교적 적게 모여 사는 곳이 사전적인 시골의 정의다. 내가 기억하는 시골에는 사실 내가 살던 곳이 포함되어 있으나, 광업이 활발하여 한 때 도시를 형성했던 곳이라 시골이라 칭하기는 어렵다. 1978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먼 거리를 혼자 여행하게 되었다. 안동시 풍산면 정지골, 유성룡 선생의 병산서원이 지척에 있는 곳이다. 처음 갔을 때는 버스정류장에서 소달구지를 타고 10리 길을 들어갔다. 어린 기억에 끝도 없이 펼쳐진 논두렁 길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득하다. 

아침부터 외숙모께서 해주셨던 고봉밥은 인심이 한가득 실려있었다. 겨울에 만둣국을 해주신 기억이 난다. 여름날 밭두렁에 앉아 먹던 풋고추와 된장도 생각난다. 시골맛은 마음의 그렇게 마음 한편에 온전한 터를 일구고 때가 되면 나를 과거로 여행하게 하는 힘이 있다. 2013년이니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2013년 사람이 살지 않는 외갓집은 폐허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장소를 가는 것만으로도 추억여행은 내 온몸을 휘감는다. 텃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들어오는 눈부신 순간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2. 워밍업 부추전과 양념장


부추의 아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촉감의 호박맛을 잘 살린 부추전은 튀김옷을 얇게 살짝 입혀져 있다. 아삭바삭한 전은 이 장르의 음식이 갖춰야 될 미덕을 제대로 갖췄다. 전의 맛을 올려줄 간장 대신 나는 칼국수 양념장을 선택한다. 평범한 간장 맛보다는 약간은 자극적이면서도 다양한 재료들을 맛볼 수 있어서 훨씬 전의 풍미를 올려준다. 당장이라도 막걸리를 한잔 해야 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부추전은 자제의 미덕을 발휘할 것을 조용히 주문하고 있다. 테두리를 중심으로 집중 공략한다. 아삭함의 끝은 어디일까라고 혼잣말하면서....




#3. 칼만두와 시골 정취

칼국수 국물은 고소하고 담백하며 깔끔하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뜨뜻한 시원함 앞에서 잠시 명상을 한다. 얇게 반죽된 칼국수 면발과 곧 터질 만두와 얼갈이, 김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맛이 만들어진 과정을 새겨본다. 아마도 봉화 어느 마을에서 시작되었을 이 칼국수와 만두의 연원에 대해 생각하는데 무슨 근거나 자료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느낌을 갖는다. 양념장을 두 스푼 얹고 상하체 기운의 균형을 잡아주는 후춧가루와 몸을 깨어나게 해 줄 비타민 덩어리 채 썰어 넣은 고추를 올려놓는다. 모양이 이쁘니 맛도 더 날 것이다.



고기가 없는 만두가 나는 좋다. 고기는 맛난 음식이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잡내의 여운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 만두피는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다. 오늘 처음 발견한 건데, 살짝 토핑 한 참기름의 고소한 내음이 깔끔한 만두소 재료들과 입안으로 확 번진다. 어쩌면 한 끼 식사를 하는 동안 이렇게 집중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내 능력에 놀랄 뿐이다. 공부를 이렇게 했어야지라는 생각과 이게 공부라는 생각이 공존하다가 마침내 삶이 공부이고 매 끼니가 공부라는 곳에 정착한다. 


빈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골맛과 시골 추억을 잠시 떠올리고는 잠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아버님과 벌초하러 가던 예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봉화, 그 지명을 떠올리면서. 수많은 추억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말이 없는 진공상태나 침묵은 말로 하는 표현보다 때로는 더 강력하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빈 그릇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빈 그릇을 하나 올려놓는다. 매 끼니만큼 일상의 다른 삶 속에서도 이런 빈 그릇을 계속 쌓아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말과 주인 부부 두 분의 넉넉한 미소가 겹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철 남도 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