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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22. 2022

기쁨에 올라타고 슬픔을 나누는 일

오랫동안 구설수와 언론에게 시달리며 그 스스로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졌다고 생각할 무렵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타이거 우즈가 회복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허리 수술도 수술이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무차별적 관심으로 멘털을 지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절치부심하며 몇 년간의 굴욕적인 순간들을 스쳐지나 보내고 점점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 2019년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던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타이거 우즈의 경기 장면이나 우승 장면을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 우승했으니 좋겠네 하는 정도였다. 오늘 갑자기 그 사람이 우승을 하면서 좋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고, 그 사람의 우승 감정에 올라타면 어떤 느낌일까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순간들을 겪게 마련이다. 그게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어려운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 장면을 다시 보는데 약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예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고, 부처는 <자타불이 즉 나와 타인이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이런 종교적 가르침은 그냥 성경이나 교회 혹은 절에 있는 것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그들도 역시 인간이므로 한계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선을 그었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인간 간의 생존경쟁과 이기심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확인하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경전은 경전에만 머물고 우리의 생활 속에 구현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갑자기 타이거 우즈가 좋아하는 그 순간의 느낌을 내가 조금 공감을 하게 되고, 내 느낌으로 옮겨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사람과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완전히 다른 천재인가? 분명 천재이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며 일면식도 없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 그도 인간이다. 좋은 플레이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표정 변화가 그것을 말해준다. 힘든 순간들과  노력했던 순간들, 그런 과정을 한 땀 한 땀 밟아나가는 모습, 굴욕적인 상황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 아 저 사람의 기쁨을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사람의 기쁨에 내가 슬쩍 올라타면 어떤 느낌일까?


굳이 타이거 우즈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태양의 서커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La Nouba'편의 붉은 천을 감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연기자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나도 관객 위를 날게 된다. 하늘을 나는 새와 구름과 꽃들이 모두 감정이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느낌이 오래갈 것 같다. 기쁨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이 단순한 느낌. 시간이 지나 사라지고 나더라도 또 다른 감정이입의 대상을 찾아 다시 충전하면 된다. 나의 느낌은 항상 내가 충전하길 기다리고 있다. 직장 동료의 기쁨을 나눠 갖고, 신입생의 기쁨을 나눠 갖고 가족들의 일의 보람을 나눠 갖고 그렇게 매 순간 나눠 갖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나의 인생이다.


타인들의 슬픔에 대해 나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아니므로 쉽게 잊히거나 쉽게 잊어 먹게 되지 않았나? 잠시 그 슬픈 감정에 들어갔다가 금방 빠져나오게 되지 않았나? 나는 아니니까 다행이야라는 마음으로.... 감정이입이나 공감, 동감이라기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월호 유가족분들께서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면 짠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곤 한다. 김훈 선생이 세월호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관해 쓰신 글을 볼 때에도 잠시 슬픔을 적셨다가 금방 잊어버린다.


중3 때 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다. 내가 그런데 엄마와 아버지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얼굴의 피부가 더 벗어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 이후로 어머님은 잠을 잘 못 주무시고 불면증과 우울증에 빠지시며 굉장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셨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바로 옆에 있던 생생한 생명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존재가 사라지는 엄청난 고통이 사춘기 내내 나의 잠재의식을 누르고 있었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헤매게 되었다. 슬픈 일을 당한 것처럼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날 세월호가 침몰한 과정에서도 나는 슬픈 감정과 눈물을 보였으나 이내 그거는 그 사람들의 고통이고 나의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잊고 지내다가 어쩌다 가끔씩 꺼내보는 사진처럼 그렇게 생각을 했었다. 오늘은 분명히 다르다. 기쁨도 슬픔도 감정이입을 통해 조금 나눌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슬픔의 감정이입을 할 경우에, 내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타인의 슬픔에 동참하고 그 슬픔을 나눌 수는 없지만 그 슬픔 근저에 있는 어떤 느낌을 조금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감정 이입함으로써, 내가 타인과 같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조금 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감정이입은 삶의 철학이고 삶의 기둥이고 삶의 근본 토대로까지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뒤면 사라지겠지만, 다시 꺼내어 볼 자신이 생긴다. 매 순간 이런 마음가짐을 하나씩 쌓아 나간다면,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마침내 세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더 멋있는 사람, 사람 향기가 나는 사람.... 어렸을 적의 외할아버지 가르침을 어머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건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사실 그 향기라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남들과 같이 있지 않고 나 혼자 있어도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제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오늘 나는 감정이입을 통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어떤 느낌으로 살아야 될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성찰에 보게 되었다. 혼자 있을 때의 마음가짐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드러남을 이제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신독(愼獨, 혼자 있을 때에도 조심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의 완성을 위해 공부하는 수양 방법)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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