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Sep 25. 2022

차돌박이 안에 박힌 맛

육류를 썩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알게 된 이 가게의 차돌 맛은 단기 기억을 넘어 장기기억 속에 잠복근무하다가도 언제든 나올 태세를 갖춘다. 거의 3년 만에 가게를 방문했다. 처음 가게를 가는 사람들과 같이 가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즐거운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먹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곳, 맛있는 곳을 소개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뭐 대단한 사회사업을 하거나, 사회를 위해 헌신하거나 이러지 못한 소시민이어서 오히려 그런 즐거움을 더 크게 느끼나 보다. 

<독특한 밑반찬 구성>

아삭한 양배추를 매운맛이 별로 나지 않은 고추장에 찍어서 한 점 먹는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양배추 진액이 몸속으로 흘러들어 메마른 위장 벽에 코팅된다. 무엇을 먹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컨디션을 만들어준다. 절인 고추는 간장 베이스이지만 짜지 않아서 좋다. 깍두기는 완전히 삭히지 않고 적당한 지점에 머물러 있어서 갓 만들었을 때의 신선한 맛과 기운,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연하게 익어가는 깊이를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 


음식을 만드는 영역과 음식을 먹는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음식을 먹는 기분과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의심을 거두고 완벽한 호기심과 무한한 수용성은 맛의 깊이를 더해주고 나를 새로운 지평으로 끌고 간다. 

<차돌박이, 그 연하고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

차돌박이는 보통 얇게 썰어 내놓고 익을 때도 금방 익어버려 먹는 맛이 덜하다. 이 가게는 그런 차돌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두툼한 차돌박이는 구울 때,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익혀, 절인 고추와 마늘과 함께 먹으면 입안 가득 차돌박이의 진한 육즙과 향이 퍼진다. 불맛의 여운조차도 향기롭다. 차돌박이는 소 한 마리에서 약 2.2kg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개 얇아서 육즙을 자아내는 씹는 맛의 여운이 금방 사라지고 만다. 두툼한 차돌박이를 오랜만에 맛본다. 차돌박이에 박힌 지방은 매우 단단하다. 마치 차돌처럼. 이 육즙 맛은 살코기와 단단한 지방이 적당한 비율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맛이다. 

<사태살과 양, 그리고 양밥>

'사태'라는 말은 원래 '샅의 고기'라 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사태고기'가 되어 나온 순수한 우리말로, 소 다리의 '샅에'  붙은 고기를 ‘사태’라 하였다. 사태는 양지와 같이 힘줄이나 막이 많이 섞여 질기지만 반면에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사태와 양지는 평양냉면이나 칼국수 등의 국물로 만드는데 필수 재료다. 예전에는 사골로 국물을 우려냈으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맛을 찾는 사람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사태와 양지로 우려내는 맑은 국물이 익숙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나는 이 국물들을 좋아한다. 오늘은 사태 불고기를 처음 먹어본다. 질기지 않고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양과 대창 역시 오랜만에 접한다. 한 선배님은 먹을 것이 널리고 널렸는데 부산물을 먹을 필요가 있냐고 얘기한다. 한 때는 술안주로 좋아했으나 30대 이후로는 내가 먼저 선택해서 먹지는 않았다. 쫀득하면서도 결이 느껴지는 양의 식감과 곱의 고소함을 접하면서 이 가게의 메뉴 구성의 독특함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음식이건 많이 먹으면 부담스러운데 살짝살짝 메뉴를 바꿔가며 먹는 재미가 있다. 그 재미의 완결판은 고소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쫀득해서 자꾸 손이 가는 양밥이다. 고기와 탄수화물을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탄수화물로 마무리하는 것이 모양상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아 딱 한 숟갈만 먹었다. 개운하고 깔끔한 마무리를 한 느낌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인연에는 다양한 일들이 개입한다. 절대적인 인간관계는 부모 자식 간, 혹은 형제간과 같다. 나머지 인간관계는 대개 상대상을 띤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깊어졌다가 옅어지기도 한다. 음식은 접착제와 같이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인연, 새로 만나는 인연, 헤어지는 섭섭한 인연들 사이를 오가며 적당한 즐거움과 적당한 섭섭함 혹은 아쉬움을 같이 만들어간다. 인상 깊은 음식과 곁들이는 인간관계 혹은 인연의 소중함을 또 한 번 깨닫는 저녁, 노을이 창가를 살짝 비끼고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의 끝자락을 지켜주는 음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