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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29. 2022

육개장 맛에 취하다

지난 6년 4개월간 단 한주도 거르지 않고 주초에 연락해 안부를 살피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는 친구이자 후배님. 그 정성에 감탄하면 후배님은 자기가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고 둘러댄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근무하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면 서로 소식이 끊어지게 마련이지만, 또 다른 후배님은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보내 내 눈과 귀가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두 사람을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뜻밖의 맛을 발견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그래서 음식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 가게를 소개해준 후배님도 뭐 괜찮을 거라는 정도로만 얘기한다. 그래도 약간의 기대를 하는 이유는 맛에 관한 한 까다롭고 좋은 가게를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대전역에 내려 한참을 걸어간다. 발전하는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게 마련이다. 대전역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골목길은 옛 모습에 더해 기울어져가는 거리와 건물의 풍경이 을씨년스러웠다. 개발이 향하는 지점이 사람 살만 한 곳을 만드는 것이라면, 좀 더 넓게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이 들었다.




허름한 골목 사이에 구세군 건물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후배님이 추천한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거쳤지만 건물은 작고 아담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기 순번 6번을 받고 꽤나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할 즈음 안내를 받았다. 식사를 앞두고 대기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든 일은 없을 것이다. 단 몇 분이라도 말이다. 기다린 만큼 음식의 효용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메뉴는 단 하나, 육개장. 대파와 고기만으로 만든 육개장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머금고 음미한다. 대파를 오래 끓이면 나오는 진액의 깊은 단맛과 고기의 구수한 단맛이 함께 어우러져 더 넓은 단맛을 맛볼 수 있었다. 국물 먹는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면서 한 모금 입에 물고 잠시 눈을 감았다. 대파가 자라난 대지, 흙의 짙은 내음을 상상했다. 소가 뜯었던 풀들이 씹으면서 입안에서 터지는 신선한 향기를 상상했다. 첫맛과 끝 맛은 같은 맛을 선사한다. 점점 위와 장이 따스해지며, 땀이 배어 나온다.


식객에 등장한 육개장은 나라 잃은 설움을 온전히 받아내면서 그 깊은 슬픔을 말아서 먹었던 순종 임금의 모습을 재현했다. 장례식장에 가면 으레 차려주는 음식 역시 육개장이다. 아버님을 떠나보내던 날, 친구가 새벽부터 수고하는 여러 사람들을 대접할 때 먹던 음식도 육개장이었다. 그 쓸쓸하고 깊은 무언가 울컥한 느낌이 조용히 밑자락을 깔고 있어서 육개장 국물 맛에 더 깊이 취하게 되었다.


자연의 재료들을 잘 살피고 그 결대로 만든. 이 육개장의 단맛은 오랜 세월 대전에 계신 분들과 이곳을 찾아오신 외지인들 모두를 넉넉하게 위로하고 남을 만한 맛이었으리라. 고기 인심도 아주 후하다. 파와 고기를 함께 입안에 넣고 씹을 때 파의 진액과 육즙이 함께 어우러졌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뜻밖의 깊고 넓은 맛을 만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바닥을 완전히 비워낼 때까지 국물 맛에 심취한다. 조금 더 먹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딱 육개장 한 그릇 안에서 완결되었다. 다 먹고 길을 나선 뒤에도 국물의 깊은 맛은 오래도록 입가에 맴돌았다.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지금도 단 맛의 향기가 내 온몸을 자극한다. 왜 이름을 명랑이라고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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