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포항을 방문했다. 95년 포항공대와의 뜻밖의 만남으로 인해 지식재산에 대해 인식하고 지평을 넓혀왔기에 포항은 내 경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추운 겨울이 오면 포항공대가 걸었던 길도 궁금해지고 과메기도 궁금해져 매년 방문했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모처럼 길을 나섰다. 2시간 20분에 서울에서 포항이라니. 초등학교 때 새마을호 열차가 개통되어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무려 2시간 20분이라니!!
포항제철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어서 그런지 포항공대는 여러모로 풍족해 보였는데, 스타트업 공간을 방문하고 보니 그 규모와 디테일한 디자인에 더더욱 놀라게 된다. 우리가 독자적인 공간을 만드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역에 설치된 스타트업 공간을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맞는지 아직은 감잡기가 어렵다. 생각이 여물고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어떤 계획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좀 더 차분히 더 많은 곳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포항공대의 체인지업 그라운드는 여러 모로 공부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학생 창업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사무공간과 쉴 수 있는 공유공간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영일대의 바닷가는 파도가 거의 없이 잔잔하고 바람도 간간이 스치듯 불어온다. 시장기를 느낀 상태에서 밥을 먹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뇌와 몸의 건강에 가장 좋은 길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기 위해 적당히 굶는 것은 서로 다른 지점을 돌아 건강한 몸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건강한 생태계와 뇌신경세포에게도 이런 습관이 이롭다고 한다. 물회와 회가 나오기 전에 한상 가득 차려져 있다. 왠지 좀 더 시장기를 느끼고 싶어 바로 돌진하지 않고 냉채를 먹는 등 우회전략을 택한다. 드디어 물회가 등장했다. 왜 포항이 물회의 고장인지 그 사연은 알 길이 없으나, 본고장의 물회는 역시 맛있었다. 시원한 맛과 단 맛과 고소한 맛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 가득 바다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활어회의 저항감이 한 때는 좋았으나, 선어회를 먹기 시작하면서 그 저항감은 나의 맛 느낌 창고에서 무채색으로 변했다. 한 접시 가득 담긴 다양한 종류의 회들은 그 저항감이 없어서 좋았다. 어떤 비법을 쓰셨는지는 몰라도 선어회와 비슷한 느낌을 선사한다. 바닷가 회집에 대한 편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회를 물회와 섞어서 먹으니, 고추냉이 간장에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음식은 자연 그대로 식재로의 영역과 그것을 손질해서 만드는 영역과 먹는 영역으로 구분된다. 자연 상태 바다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면서도 의도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듬고 멋진 음식으로 만든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은 내가 맛있게 먹는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다한다. 맛있게 먹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처음 만난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음식을 먹는 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각자 살아온 시간과 공간의 결이 다르고 다양한 만큼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풍성하다. 맛있는 음식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을 통째로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슬쩍 그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오늘 주제는 1999년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 7차전을 보는 색다른 시각에 관한 얘기였다. 몰지각한 관중이 외국인 선수 호세를 폭력으로 자극하고 이에 격분한 호세가 야구배트를 날리고 퇴장당한 후 동료들이 화가 나 유리창을 깨고 다시 관중들이 사발면 등을 투척하는 난장판. 관중이 홈런 친 호세를 칭찬하며 먹을 것을 던져주고 호세가 그 답례로 야구방망이를 관중에게 선물하고 환호하던 동료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유리창을 깨고, 관중들이 다시 사발면 등을 선수들에게 선물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묘사하는 그 순간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연상케 하는 유쾌한 시각이어서 한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늦은 밤 바닷가를 산책하는 호사를 누리며 숙소로 향한다.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스트레스를 날리고 뇌신경세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몸의 밸런스를 새롭게 한다. 마음 깊은 곳 평화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