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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Sep 17. 2022

냉삼겹의 마력과 추억 한 사발

지금 한 사람과 만난다.

그와 내가 만났던 시간을 돌이켜 본다.

섭섭했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이 먼저 떠 오른다.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할 수 있었던 말들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했다면 할 수 있었던 행동


지금 한 사람과 만난다.

내가 그와 함께했던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을 떠올린다.

수많은 밤들을 보내면서 써 내려갔던 사업계획서

사업이 채택되어 기뻐했던 날들

한 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축하를 보내던 날들

열정을 갖고 했던 일이 선물하는 사소한 성취

삶이 말을 걸어오는 일상의 기쁨을 주고받으며 축복을 기원했던 날들


지금 한 사람과 만난다. 냉삼겹은 정말 오랜만이다. 성북구청 대각선 맞은편에 자리 잡은 두꺼비집에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쌓았던가? 냉삼겹이 던져주는 추억 한 보따리를 잠시 눈을 감고 풀어본다. 눈물과 웃음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나를 감싼다. 치사하게 생삼겹과 냉삼겹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만남을 축복하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거운 인사로 더 무거운 공기를 불러왔던 과거를 날려 보내며 가벼운 인사를 하고 가벼운 안부를 묻고 가볍게 한 잔을 권하고 비운다. 지난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묻지 않아도 안색에 쓰여있는 사건들을 읽을 수 있다. 그 눈물겨운 수고로움에 위로의 한 잔을 권한다. 


콩나물과 김치와 냉삼겹이 내공 깊은 불판 위를 가로 세로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음식은 오직 음식으로써만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그 음식을 먹음으로써만 음식에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가볍게 통과의례를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돼지가 자랐을 오스트리아의 돼지우리를 상상한다. 사료를 먹었을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를 먹었을지 풀을 먹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다. 불판 위에 올려졌던 무수한 냉삼겹과 콩나물과 김치와 함께했던 50년의 세월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안개 낀 들판처럼 상상할 수 있다. 원 막걸리에 관한 스토리를 접해보지 못했지만 그 막걸리가 맛이 있었다는 과거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다. 함께 마셨던 분들이 떠오른다. 대전에 오면 원 막걸리가 먹고 싶어 진다. 


오늘 한 사람과 만나면서 원 막걸리를 마신다. 함께했던 날들의 추억과 함께하지 못했던 날들의 아쉬움을 담아 지금 여기 서로 마주 보며 냉삼겹과 볶은 김치와 콩나물과 마늘과 된장을 올린 상추쌈 하나에 한 잔을 마신다.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를 뽑아내고는 그 아쉬움을 다시 맥주 한잔에 담는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서로의 길들을 축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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