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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Sep 02. 2023

먹태의 귀환

6년 만에 맛보는 촉촉한 부드러움

@1. 먹태와 첫 만남


먹태는 어쩌다 맥주집에 가면 배가 불러 다른 안주를 먹을 수 없을 때 가끔 시키곤 했다. 까슬까슬하고 말라있어 치아 상태가 안 좋은 난 그다지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황탯국, 코다리, 생태탕은 좋아했지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2015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몇 달 후 우연히 촉촉 먹태를 만나게 되었다. 사장님께서 둘둘말은 한지에서 먹태를 한 마리 꺼내 이리저리 비틀고 머리를 똑 딴 다음 살얼음이 살짝 끼어있는 먹태를 손으로 서너 점 찢어서 이 가게만의 독특한 소스에 담가놓아 주셨다. 맥주를 한 모금 먹고 먹태 한 점을 먹는 순간 이 맛에 완전히 반했다. 부드럽고 촉촉하며 씹는 질감이 부드러워 녹아들어 갔다. 그 해 여름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이 가게를 찾았다.


2015년 겨울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후배님들을 모시고 이 가게를 찾았다. 다들 올 때는 툴툴대면서 왔지만 첫맛에 반한 어느 친구는 다섯 마리를 포장해 갈 정도였다. 가끔 사장님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먹태 대가리한 망을 선물로 주셨다. 된장국이든 김치찌개든 베이스로 넣어 끓이면 음식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2. 먹태와의 이별

2017년 여름 우연히 가게를 들렀는데 며칠 뒤 가게를 접는다고 하신다. 마지막 이별 선물로 먹태 대가리 한 망(거의 2백 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을 선물로 주셨다. 섭섭한 마음은 잠시였다. 그 뒤로 삶의 질이 추락하는 느낌을 가졌다. 사람들이여 동네 맛집 가게를 우습게 보지 마시라!! 그 가게가 바로 당신들의 자산이다. 그 음식자산은 사라지고 나면 그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다는 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감히 장담한다.


2018년 3월 일본 대사관에 근무하던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간사이 공항에 내려 발길을 돌리는데 내 눈앞에 먹태가게 사장님이 보였다. 나도 깜짝 놀라고 사장님도 깜짝 놀랐다. "다시 개업하게 되면 연락드리겠다.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좁을 수가.... 죄짓고는 못살겠네요"라는 농담을 하시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셨다. 그 뒤로 몇 번 연락을 드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잊고 살았다. 먹태 대신 집 근처 가게에서 짝태를 만나게 되었다. 정성껏 마디마디 구워주신 짝태를 물에 담가 먹으면 청주에 담근 먹태만은 못해도 식감이 좋아 짝태를 대안 삼아 여름 한나절을 생맥주와 나게 되었다.


@3. 촉촉하고 부드러운 먹태의 귀환 소식

첫째와 둘째가 독립하고 대학 2학년 막내딸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막내딸은 나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한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에도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제일 반가운 소식은 맛있는 안주와 술 소식인데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빠, 저쪽 길건너에 맥주집이 새로 생겼는데 대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 안주가 뭐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냐?" "아! 먹태인가 그런 거였어요" 순간 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혹시 그 먹태 사장님이 아닐까? 그런데 사장님은 재개업하면 내게 연락 주신다고 했는데....


궁금해서 아내와 막내딸이 다이소에 물건 사러 가있는 동안 차를 몰고 그 근처로 가보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사장님이 가게를 재오픈하셨다. 근처 주택가와 장사 안 되는 가게들에서 들어온 민원 때문에 힘들어하셨던 예전과 달리 이번 가게는 주변에 음식점도 없고 저녁 이후면 셔터를 내리는 가게들 사이에 독립된 장소였다. 밖의 테이블도 넉넉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다음날 다른 곳에서 저녁 약속 일찌감치 끝내고 곧장 가게로 향했다.

@4. 사장님과의 재회 그리고 먹태와의 재회

 감격스러운 이 기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반갑게 맞아주신 사장님과 먼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서로 보고 놀랬던 이후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변치 않으신 모습과 함께 먹태의 맛도 변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좀 전에 막걸리를 마셨으나, 먹태와 생맥주를 위한 자리는 이만큼 넓게 비워두었다. 맥주 한 모금 마신 후 먹 태 한 점을 소스에 찍어 먹는다. 예전 맛이 그대로 소환된다. 상상 속에서 생각해 본다. 내 입안의 미각수용체들과 내 뇌의 기억들이 지금 현재 내가 느끼는 이 음식의 맛을 통해 오래 전의 경험들을 소환하고 있다. 오랫동안 먹태 한 점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또 음미한다. 예전처럼 나초칩에 먹태와 구운 껍질을 올려놓고 삼합으로 먹어본다. 6년 동안의 아쉬움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가 여기서 경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5. 음식과 삶에 관하여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내가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의 지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은 입안에 머물지 않고 뇌로 올라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에 남아 다시 그 음식을 먹을 때 소환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포함된다. 산다는 것은 오래된 추억을 현재로 소환해서 먹는 것과도 같다. 미래는 내가 갈 수 없기에 현재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생생한 질감만을 가져갈 수 있다. 그 미래에 현재의 추억을 소환해 음식을 먹으면서 달콤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과거의 인생도 현재의 인생도 미래의 인생도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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