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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11. 2020

고소한 세꼬시와 깊은 맛의 우럭 매운탕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의 식재료를 사전에서 찾아보는 일은 그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준다. 찾아보면 예외 없이 대부분의 식재료들은 우리 몸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긍정적 영향을 준다. 그 순간 식재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를 생각해본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시행착오 속에서 짧게 인생을 마감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꼼꼼하게 분석하고 정보를 캐내던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를 그냥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제대로 무임승차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이 그들의 희생과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 삶은 <모르는 게 약이다>와 <아는 것이 힘이다> 사이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계는 순전히 직관과 감각의 영역으로 보인다. 수많은 경험을 축적한 인생 선배들을 가까이 모시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도 생각된다. 그런데 음식의 연원을 알아보는 것은 <아는 것이 힘이다>의 영역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는 만큼은 눈으로 보는 즐거움과 맛을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세꼬시는  부산 지역의 일상에서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있는 경우로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본어 사전에서는 ‘せごし(背越し)’,  정확한 발음은 ‘세고시’,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서 ‘세꼬시’라고 발음한다. 생선의 머리, 내장, 지느러미를 떼어 낸 다음 뼈째로 썬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세꼬시란 생선회 뜨는 방법으로 뼈째 썰어 먹는 것을 말한다. 세꼬시의 연원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일본에서는 16세기 말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의 포정 문서(庖丁聞書)에 “越川鱠といふは。 かぢかと云魚を背越に……”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략 16세기 이전에 일본에서 생겨난 말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세꼬시를 쉽게 하기 위해 '회도리'라는 기계가 보급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가까이 지내고 있는 후배가 처음 이곳을 알려주었다. 새로운 가게에 가는 것은 작은 모험이다. 새로운 맛을 만나는 기쁨과 혹여 실망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경우 힘든 시간을 겪게 되는 사이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세꼬시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막걸리에 취했다. 회를 안주 삼는 저녁식사 때면 늘 회보다는 술을 더 마시게 되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대체 그 세꼬시 맛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늘은 적당한 속도로 막걸리의 양을 조절하기로 결심했다. 


큰 솥에 다량으로 끓일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그런 깊고 부드럽고 구수한 맛의 미역국이 배고픈 속을 달랜다. 양배추와 콩가루, 초장을 버무려 세꼬시 먹을 준비를 한다.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음식이 나온 그릇과 그 안에 담긴 음식의 모양을 얼굴에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실제로 음식의 얼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대개 배고플 때 훨씬 뚜렷하게 잘생긴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얀 생선살들이 촘촘히 담겨있는 세꼬시 한 접시는 아주 뽀얗고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 양쪽으로 날치알이 담긴 접시가 배치된다. 


상추와 깻잎에 세꼬시 한 점을 놓고, 버무린 양배추에 날치알과 매콤한 고추 한 조각을 올려 그림을 완성한 뒤 입에 넣는다. 세꼬시의 약간은 거칠고 부드러운 맛이 날치알과 뒤섞인다. 상추와 깻잎은 그 융합 작용을 겉으로 감싸고 고추는 약간 매운 점하나를 떨어뜨려 세꼬시 한 점의 맛을 완성한다. 살점들은 고소하고 뼈는 씹히는 맛이 있어서 살과 뼈를 동시에 으깨는 매력이 아마도 세꼬시의 맛인가 보다. 생선의 뼈는 아득한 로망을 추억하게 한다. 일곱 살 때 처음 어묵을 먹었다. 생선 뼈의 옅은 질감이 지금도 살아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런 어묵을 먹어 본 지 오래다. 세꼬시를 먹는데 어묵 얘기를 하다니.... 넷이서 한 접시 정도는 얼른 소화하고 또 한 접시를 주문하려 했으나, 세꼬시가 담긴 접시의 넓이와 깊이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양 한 점 한 점들은 끝나지 않는다. 


매운탕은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럭 매운탕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매운탕 중 하나다. 생긴 모양이 좋아하는 생선인 볼락과 닮아있다는 점도 있고, 기름기가 아주 짙지도 옅지도 않아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그 깊은 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좋아한다. 대개 매운탕의 생선살은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굳어진다. 우럭 매운탕은 많이 끓여도 생선살이 부드럽다. 머리와 생선회를 뜨고 난 매운탕은 껍데기만 먹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뼈에서 우러난 국물 맛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운탕은 생선을 통째로 넣어야 제맛이다. 특히 우럭은 통째로 넣되 적어도 두 마리는 넣어야 깊은 국물 맛과 부드러운 살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한 그릇으로 충분히 우럭의 매력을 맛본다. 다양한 안주를 이것저것 먹는 복잡함도 좋지만, 단 두 가지의 선이 굵은 메뉴를 단순 명료하게 먹는 것도 좋다. 같이 먹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우럭 매운탕의 국물처럼 점점 더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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