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맥주를 겸한 식사다. 어떤 식당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별점을 쫓아가는 것도 좋지만, 난 직관을 더 믿는다. 그 가게의 위치와 분위기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두 시간가량 길을 걸으면서 두세 군데 체코 전통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막상 식당으로 가려고 하니 헷갈려서 같은 길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느라, 일행들에게 민폐 아닌 민폐를 끼쳤다. 다행히 그 식당을 찾았다. 분위기 반전에 반쯤은 성공했는데, 과연 내 감각이 얼마나 기대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안내를 받고 들어선 가게는 생각보다 넓었다. 특히 안쪽 마당에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운치가 있다. 바로 그 자리로 안내받는다. 테이블마다 다른 직원들이 맡고 있어서 그 직원과 눈을 마주쳐야 주문을 할 수 있다. 필스너 우르겔을 주문한다. 체코는 맥주, 그중에서도 라거 맥주에 관해서는 뿌리 깊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여행을 위해 맥주와 관련된 책들을 살펴보고 그 핵심내용들을 요약해 왔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거품이 별로 없는 맥주를 선호하지만, 이곳은 맥주의 본고장답게 거품이 거의 35% 지점에 도달해 있다. 비엔나에서도 약간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확연히 적당히 많은 거품을 실어온다. 입에 닿는 거품과 거품을 헤치고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진한 라거의 향과 맛이 일품이다.
맥주 양조는 문명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만 3천 년은 됐을 것이다. 밀과 보리는 최초로 재배된 곡물에 속한다. 공기 중에 있던 효모 포자가 젖은 곡물에 대량으로 서식하게 되면 알코올성의 곤죽으로 발효된다. 효모는 당을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분해하여 자랄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맥주의 여신 Ninkasi에게 바치는 찬송인데, 레시피의 역할도 한다.
닌카시, 당신이 항아리 안의 보리를 적셔 주십니다.
닌카시, 당신이 뜨거운 물과 보리를 갈대 깔개 위에 펼쳐 주십니다.
당신이 양손으로 위대하고 달콤한 맥즙을 떠받쳐
꿀과 술로 만들어 주십니다.
초기의 맥주는 침전물이 있어 갈대로 마셨다. 맥주 양조는 수메르에서 이집트, 그리스, 로마로 전파됐다. 너무 추워 포도가 자라지 않던 북유럽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다. 로마인들은 맥주를 야만인의 술이라고 무시했다. 맥주는 맛있고, 취기를 불렀고 물보다 안전한 음료였다. 오염된 물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가득하지만, 알코올과 양조 과정을 거치면 세균이 죽는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에 맥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중세에 가장 인기 있었던 음료는 순한 맥주였다. 며칠이면 완성되는 탁한 술이었고 나무껍질, 약초, 달걀까지 온갖 재료로 맛을 냈다. 아이들까지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 함량은 1%에 불과했다. 현재와 같이 알코올 함량이 4% 정도인 맥주는 귀하고 비쌌다. 맥주의 기원을 반영하듯 북부와 중부 유럽에서 오늘날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다. 체코가 1위다.
홉, humulus lupulus 홉의 암꽃에 함유된 쌉쌀한 송진 성분과 아로마 오일 성분은 맥주의 양조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홉꽃은 작은 녹색 솔방울같이 생겼는데, 꽃잎이 겹겹이 겹쳐있는 모양이다. 꽃잎 뿌리 부분에는 부풀린 샘 lupulin gland이라는 작은 주머니가 있는데, 여기에서 루풀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 루풀린에는 맥주 양조에 필수적인 알파산과 베타산, 아로마 오일 성분이 들어있다. 알파산과 베타산은 맥주의 쓴 맛을 만들어내고, 오일 성분은 맥주에 아로마를 입힌다. 그리고 알파산에 함유된 항균 성분은 맥주의 부패를 방지하고 보존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모는 당분을 먹이로 하는 미세한 곰팡이로, 발효과정에서 당분을 섭취하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세상에는 150여 가지의 효모가 존재하지만 양조에 활용할 수 있는 효모는 그중 몇 개뿐이다. 효모의 종류에 따라 라거가 되기도 하고, 에일이 되기도 하며, 와일드 에일이 되기도 한다.
라거 효모는 사카로마이세스 파스토리아누스 Saccharomayces Pastorianus는 사카로마이세스 바야누스 Saccharomayces Bayanus라는 효모와 사카로마이세스 세 레비지에 Saccharomayces Cerevisiae의 유전적 교배종이다. 저온에서 양조를 마친 효모를 걷어내 다시 사용하는 cropping이 15세기초 바이엔슈테판의 수도사들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으리라는 점에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섭씨 8-12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라거 효모는 발효 시 에일 효모보다 더 많은 당분을 먹어치우며 발효기간 또한 더 길다. 고온에서 발효되는 맥주가 풍부한 과일향을 자랑한다면, 저온에서 발효되는 맥주는 깔끔하고 가벼운 맛을 특징으로 한다. 저온 발효맥주는 하면 발효맥주 Bottom fermented beer라고도 부르는데, 에일 효모와 달리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발효기간은 통상 5-14일이다.
에일을 만들 때는 사카로마이세스 세 레비지에 Saccharomayces Cerevisiae라는 효모를 사용하여 따뜻한 온도에 발효시킨다. 에일을 일컬어 상면발효맥주 Top fermented beer라고도 하는데 발효과정에서 효모가 거품을 형성하여 표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에일 효모는 다른 효모에 비해 발효기간 동안 맥아즙 속의 당분을 왕성하게 먹어치우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발효 후 당분이 비교적 많이 남아 라거와 비교했을 때 단맛이 강하며, 입안을 채우는 느낌 또한 더 부드럽다. 풍미에 따라 맥아즙은 블론드 에일, 페일 에일, 앰버 에일, 브라운 에일, 밀맥주, 포터, 스타우트, 트라피스트, 발리 와인 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15-24도, 발효기간은 2-4일이다.
hopy는 '홉 느낌이 나는'이라는 의미. 홉은 쓴 맛과 더불어 양조업자 입장에서는 레몬, 리치, 코코넛, 오렌지, 쐐기풀, 가을 나뭇잎, 제라늄 등 다양한 향을 내는 아로마의 원천이기도 하다.
malty는 '맥아 느낌이 나는'이라는 의미. 양조업자 입장에서는 다크 초콜릿, 밀크 초콜릿, 토피, 캐러멜, 건포도, 훈연, 위스키, 감초, 타르, 당밀 등으로 다양하게 구별되기도 한다.
2011년 프라하에 처음 왔을 때 먹었던 굴라쉬는 거의 육개장에 가까웠었는데, 오늘 이 굴라쉬는 진하고 건더기가 많지 않아서 국이라기보다는 진한 수프에 가깝다. 맛도 역시 진하다. 짠 득한 식전빵과 잘 어울린다. 루꼴라에 토마토가 버무려진 시저 샐러드는 청상추가 아니어서 특히 했다. 루꼴라의 향이 진하고 깊어서 맥주와 잘 어울린다. 학센은 처음 부드러울 때 계속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 딱딱해져서 애초에 기대에는 약간 못 미쳤다. 맥주가 맛있으니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수용할 수 있다. 모자란듯하게 일어서는 게 좋은데 학센이 차지한 자리가 약간 허전해서 연어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다.
1리터 잔은 너무 무거웠다. 아무래도 적은 잔으로 자주 주문하는 것이 더 나을듯하다. 마시는 동안 무겁기도 하지만, 조금씩 김이 빠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술에 대해 너무 욕심부리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하면서….. 계산할 때 약간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계산을 요구하는 상황. 막내딸 트레블 월렛에 체코 코루나로 환전해 두었는데 결재 시 요구한 비밀번호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내가 현금을 찾으러 ATM기에 갔는데, 나 역시 비밀번호가 먹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막내딸이 기지를 발휘했다. 여섯 자리 비밀번호 중 네 자리는 원래 번호를 넣고 나머지 두 자리는 00을 넣었더니 비밀번호를 인식했다. 위기탈출 !! 가게 입장하기 전에 카드가 되는지 먼저 물어봐야겠다. ATM 현금 인출시 생각보다 수수료가 비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