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9년 전의 나에게

[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prologue]

by 이진규
“좋은 아침입니다.”


흰 가운 입은 젊은 의사가 아침 햇살 같이 밝은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는 떡 진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끼니를 걸렀는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실거렸다. 하지만, 밝게 웃는 얼굴만은 생기가 넘쳤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도 매일 웃는 얼굴로 아침을 여는 의사가 내심 반가운 눈치다.


“선생님, 도대체 출근을 몇 시에 한거여? 잠은 좀 잤는겨?”

“어머님, 잘 주무셨어요? 저는 어제 다행히 새벽에 콜이 별로 없어서 푹 잤네요. 두 시간 정도...?”

“아이고, 제대로 잠도 못 잤구먼. 이거라도 먹고 가. 내 손주 같애서 그려.”

“근데 여기 환자분은 어제 새로 오셨나요?”


의사는 귤 서너 개를 양손에 받아 든 채, 옆자리 커튼에 감춰진 침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의사가 커튼을 걷어내자 젊은 20대 청년이 부끄러운 듯 침대에 누워 고개만 까딱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양쪽 팔과 다리, 머리에 하얀 붕대를 휘감고 누워 스스로 일어나기에도 힘겨워 보였다. 아무래도 큰 사고를 당한 모양이다. 의사는 환자의 차트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진다.


“신경외과에서 전과되신 OOO님 맞으시죠? 아침 일찍 건너오셨네요.”

“아... 안... 녀... 엉... 하... 세... 요...”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원래 멀쩡한 애였는데...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으면...”


커튼 젖히는 소리에 환자와 비슷한 나이또래의 여성이 조그만 간이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적당한 크기의 베개와 담요, 그리고 잡다한 식기 용품들과 간식들이 주변에 즐비해 있었다. 익숙한 듯 간이침대에서 일어나는 차림새로 보아 환자의 누나쯤 되는 듯하다.


“네, 오늘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아침 식사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운동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진행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꼭 데리고 시간 맞춰 갈게요. 근데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거 맞나요...?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보호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사는 생각이 많아 보인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나빠서였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아서였을까? 의사는 아무 말없이 창 밖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바라보고 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에 보호자도 환자도 어리둥절하고 있다. 의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움찔거리는 입을 애써 다물었다.


“잘 될 겁니다. 조금 있다가 교수님 오 실 텐데, 그때 같이 얘기해 보시죠.”


새로 온 의사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보호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의사의 마지막 대답이 마냥 차갑지만은 않았으니까.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따스함이 묻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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