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_chapter 1]
별빛이 창밖을 서성이는 새벽녘,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전공서적과 씨름 중이었다. 빈 종이에 얼굴을 파묻고 몇 시간째 낑낑대는 수학과 선배, 졸음을 못 이기고 책상에 엎드려 꾸벅꾸벅 조는 후배, 빨개진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동기. 그날, 내 머릿속에서는 화학 물질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핏기 없는 얼굴로 아침햇살을 맞으며 도서관을 나섰다. 친구를 보니 눈 밑이 퀭하기 마찬가지였다. 계단을 내려오며 물었다.
“야, 내가 아까 새벽에 떠오른 개똥철학이 있는데...”
“그게 뭔데?”
“수소와 산소가 만나서 물이 될 때 에너지가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러면 분자로 이루어진 사람들 사이에도 에너지가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그러겠지. 근데 그게 왜?”
“그렇다면 누군가는 에너지를 주는 역할, 누군가는 받는 역할을 하겠지?”
“아마도...?”
“왜 그럴 때 있잖아, 어떤 친구랑 있으면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받는 느낌. 그건 그 친구가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면 에너지 저장 용량이 늘어나서 에너지를 마구 퍼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멋있어질 것 같긴 하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좌우명은 ‘가능한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자’로 정했다.
‘리더십 경험, 봉사활동, 교환학생. 이 세 가지는 대학생활에서 꼭 해봐야 할 경험입니다.’
어느 선배와의 멘토링에서 들은 조언이었다. 마침 학교에서 3주간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 대학생활을 더 빛나게 해 줄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머릿속 계산기는 잠시 꺼두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봉사정신을 끌어올려 지원서에 담았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장 먼저 얼굴을 덮쳤다. 이어 약간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늘 높이 솟은 야자수와 도로를 태연하게 걸어 다니는 소와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아프리카였다.
TV에서나 보던 우리나라 1970년대 풍경을 마주한 듯했다. 낮은 건물들과 재래시장 같은 시골 장터가 길거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형형색색 과일이 가득한 가판대에 들러 들러 종류별로 고르며 맛을 봤다. 과일은 새콤하면서 비리고, 밍밍하면서도 떫었다. 과일의 단맛은 없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만남은 달콤했다.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열 시간 같은 세 시간이 끈적하게 흘렀다. 끝없이 이어진 비포장 도로 위, 비좁은 봉고차 안에서 우리는 원 없이 가까워졌다. 꾸벅꾸벅 졸다가 차창에 머리를 한 번, 옆자리 누나 어깨에 다시 한번, 맞은편 친구 머리에 또 한 번 부딪혔다. 그제야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수업을 진행할 학교로 향했다. 까맣게 빛나는 온화한 표정의 교장선생님과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로 한껏 들뜬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첩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가며 한 명, 한 명 천천히 불러보고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도 내 마음을 읽은 듯 따스한 미소로 화답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수업시간에는 화학을 배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시약으로 직접 실험을 했다. 쉬는 시간에는 함께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강남스타일 춤을 추며 어린아이처럼 뛰놀았다. 그날 흘린 땀방울과 맡았던 공기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오늘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한국의 태양이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체육선생님 같았다면, 아프리카의 태양은 열정 넘치는 학생 주임선생님 같았다. 너무 가까워서 벗어나고 싶을 만큼 뜨거웠다. 볕이 사납게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엄한 선생님을 피하는 학생처럼 그늘을 찾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아침에는 선생님이었지만, 오후에는 인간 포클레인이었다. 곡괭이를 양손에 움켜쥐고 한국까지 닿을 기세로 땅을 파 내려갔다. 삽을 든 다른 단원이 흙과 돌을 자루에 담아 위로 퍼 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기를 어느덧 수일째, 매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며칠 남았더라?’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는 땀을 흘렸다. 제법 깊은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이 밀려왔다. 현지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다녔고, 마을 어른들은 묵묵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그렇게 간이 저수지를 완성했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나면, 몸은 축 처진 빨래처럼 기운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빨래였다. 온몸을 뒤덮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모자부터 양말까지 모두 벗어 손으로 빡빡 빨았다. 젖은 옷들을 탈탈 털어 문 밖 빨랫줄에 널어놓은 후에야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는 따뜻한 물 대신 차가운 흙탕물이 흘러내렸고, 발 밑에서는 바퀴벌레가 재빠르게 도망 다녔다. 나도 모르게 남은 날짜를 세어보았다. 침대에 누워 손바닥의 물집들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그래, 3주만 버티자. 딱 3주만.’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어느덧 곡괭이질이 익숙해질 무렵,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 되었다. 나는 정든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었다. 지난 3주간 써 내려간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쉬움과 고마움, 그리고 애틋함으로 가슴에 맺혔다. 한참 내 손을 붙잡은 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던 똘똘한 반장 아벨에게 물었다.
“아벨아,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
“공부 열심히 해서 똑똑한 변호사가 될 거예요”
“좋아, 그럼 10년 뒤에 멋진 변호사가 되어서 선생님과 다시 만나자. 잊지 않을게.”
“네, 저도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할게요.”
아벨의 진심 어린 눈빛 앞에 내 마음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었고, 그래서 열심히 했다. 과학고에 입학해 또래보다 일찍 졸업했다. 부모님은 어린 나이에 명문대에 입학한 나를 자랑스러워하셨고,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디딤돌이기도 했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 정도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야?’
에티오피아에 온 것도 빛나는 스펙을 위해서였다. 화려한 성취로 내 가치를 증명하는데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너무도 단순한 진리를 아벨에게서 배웠다.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동시에 깨달음을 준 아벨에게 고마웠다.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좌우명을 바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돕자’로.
“내일이면 떠나네요. 시간 진짜 빠르죠, 형?”
어둠이 깃든 저녁, 룸메이트 형과 나란히 누웠다.
“그러게. 저기 앞에 쪼그려 앉아 빨래할 때만 해도 진짜 집에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여기 오길 잘한 것 같으세요?”
형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 위로, 무수한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별빛.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그 소중한 시선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고맙다, 에티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