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P라는 말이 있다. break-even-point의 줄임말로, 일정기간 수익과 비용이 같아서 이익도 손익도 생기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매출'로 생각할 수 있다. 매월 고정비로 900만 원이 발생하는 가게라면, 손익분기점(bep)은 하루에 30만 원인 셈이다.
bep는 경제학 용어이지만,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bep(생존 분기점), 최소한의 행복을 위한 bep(행복 분기점)처럼.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글을 쓰는 것에도 bep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경우 글쓰기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무려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무언가를 끼적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무언가를 강렬하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정도의 소재가 있어야 한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대체적으로 글이 일관적이고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으로 신체의 컨디션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뇌를 괴롭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할 때면, 나의 뇌는 즉각적으로 글쓰기를 멈추라는 오더를 내린다.
또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야 한다. 아무리 몸 상태가 좋더라도 글쓰기가 아닌 야외 활동이나 다른 것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앞의 두 가지 조건인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소재'와 '최상의 신체 컨디션', 여기에 글을 쓰야겠다는 마음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글을 쓸 준비단계가 끝난 셈이다.
최근의 나는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진 삶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글의 소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격무로 몸과 마음이 늘 지쳐있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무려 99,000km에 달한다는 온몸의 모세혈관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작년 한 해동안 일을 쉬면서 좋은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편한 상태에서 느긋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무언가를 끼적일 엄두도 못 내는 삶이 길어지니 비로소 작년 한 해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깨닫게 된다. 늘 쓰는 삶은 곧 언제나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4인 가족이 살아가기 위한 '경제적인 bep'를 메꾸기 위해 회사를 다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업무강도는 '생존의 bep'를 위협한다. 힘들다, 쉬고 싶다가 아닌 '죽고 싶다'가 더 많이 떠오르는 걸로 보아 당분간 무언가를 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특별하지 않지만 소소한 것들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 누군가는 오랜만에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었고, 다른 누군가는 나의 어려운 상황을 오랫동안 가만히 들어주었다. 주말에 읽은 2권의 책은 메마른 정서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고, 아내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나보다 더 분개했다.
지속가능한 (가장으로 서의) 삶을 위해 '생존 분기점'에 오래 머물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좋은 음식과 운동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승리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행복의 회로를 더 적극적으로 돌려야 함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계속 쓰던 때 심리적으로 조금은 더 안정되었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관심과 애정을 오롯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글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쓰는 행위는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에너지를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할 때의 나는, 적어도 최소한의 생존분기점보다는 훨씬 더 높은 어딘가에 머물고 있지 않았을까.
당장은 무언가를 쓰는 게 버거울 것 같다. 초고를 쓰기 위한 집중력도, 퇴고를 위한 여유도 남아있지 않다.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이런 상태가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모든 에너지를 생명유지를 위해 쓰기에 급급한 삶이 하루아침에 솟아오르기는 쉽지 않을 테니.
안타깝게도 끝이 없는 업무는 몸과 마음이 아플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하는 취미활동이 내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들지만, 결국 스스로 더 단단해져야 함을 느낀다. 이미 몸과 마음이 바닥인 것 같은데 앞으로 최소 30년은 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때까지 살아는 있을까?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보자. 뭔가를 꾸준히 끼적이던 그때를 떠올리며 이 시간을 견디어 보자. 아주 작은 시간과 마음과 곁을 내어준 사람들을 기억하자. 나를 믿고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는 가족의 온기를 느껴보자. 나를 만드신, 뼛속까지 나를 잘 알고 있을 하나님을 기대하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BEP를 조금만 더 넘어서 보자. 죽음을 마주하기에는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