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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옆집에 주거침입범이 산다 #1

by 하은


"나 쳐도 못 나가! 나 죽어도 못 나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가!"


거실이 온통 소란스러웠다. 이상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데도 영 현실감이 없었다. 만약 부모님이 다투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벙찌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우리 집 식탁에 앉아 목청껏 자신의 결백을 외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옆집 아주머니였다. 대체 어쩌다 가족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한밤중에 우리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까?




3월 3일, 월요일. 삼일절이 토요일과 겹쳐 대체공휴일이 된 날이었다. 늦잠을 잤다. 여유롭게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운 뒤 집 근처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을 봤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파트 화단에 앉아 있는 고양이와 눈인사를 나눴다. 평화롭고,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저녁 메뉴만큼은 좀 달랐으면 했다. 배달 앱을 켜고 수십 번 스크롤을 오르내린 끝에 메뉴를 결정했다. 오늘은 치킨이다. 주문 완료! 침대에 드러누워 한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중 화면에 알림이 떴다.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바로 드시면 제일 맛있어요!'


아싸. 드디어 왔다. 뭘 보면서 먹지? 여고추리반? 나 혼자 산다? 행복한 고민을 안고 거실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팔만 빼꼼 내밀어 치킨 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문을 닫자마자 거의 동시에 ‘똑똑’ 소리가 났다.


"옆집인데요.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잠시 문 좀 열어주세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치킨 식겠다······.'였다. 무슨 얘기인지 몰라도 빨리 듣고 끝내야지 싶어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평소 오가며 몇 번 인사를 나눴던 옆집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말을 꺼냈다.


"마사지기 소음 때문에 그런데요. 내가 우리 층, 위층, 아래층, 다른 집들은 다 확인했는데 이 집만 못 봤어. 집 좀 봐야겠어."


네? 너무 뜻밖이었다.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 집을 보여 달라니. 치킨 먹을 생각에 정신이 팔려 덜컥 문을 열었던 1분 전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황당한 요구에 어이없는 속내를 꾹 눌러 담고 대답했다.


"저희는 평소 집에 없는 시간이 많고, 소음이 날 만한 마사지기도 없어요. 저희 집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 밤에 갑자기 집을 어떻게 보여드려요. 안 되죠."


하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꼭 집을 확인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무의미한 공방이 이어지던 중, 아주머니는 눈 깜짝할 새 현관에 서 있던 나를 밀치고 거침없이 집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 긴박한 찰나에도 자신의 신발만은 현관에 꼬박 가지런히 벗어 둔 채였다. 주거침입과 한 줌의 K-예의범절이 뒤섞인 묘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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