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게 공격받았다.

2019년 3월 22일 토요일 새벽 1시 38분

by 진희

‘나’의 합리화 그리고 또 다른 ‘나를’위한 합리화


나는 내 전공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 이유는 내 전공이 잘라서도 앞으로 뜨는 유망직업이여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적성에 맞으며 인정 받고 있다는 점이였다. (실을 인정은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튼간에 나름 학생신분으로 프리랜서로도 활동으로도 일년 휴학으로 취업하고 1년이란 짧으면 짧은 하지만 학생으로써는 커리어라 혼자 스스로 인정하는 스펙을 쌓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돌연 내 전공과는 무관하면서도 어쩌면 내 전공을 아니면 내 전공을 하나의 매개로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성격의 일을 했다. 1년 7개월간. 좋은경험이였다. 그리고 어찌됬든 나는 배웠다. 뭐가되든 간에. 그것이 내 미래에 나쁠일은 없다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1년7개월 동안 스스로를 타박하고 혼내며 자존감이 무너졌고 그 자존감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적성에 맞지 않아 억지로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니다. 그랬으면 내 성격에 이미 때려쳤을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 1년7개월을 일했다. 특별한 무언가. 차별성을 위해서. 나의 자존감이 무너진건 SNS다.


난 그닥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많이 올리는 사람도 아니며, 딱히 댓글이나 좋아요를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다. 팔로워나 팔로잉에 집착하는 사람도 아니다. 난 그냥 내 작은 일기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그런 수단 + 나의 감각과 사회이슈를 알려주는 도구 였다. 그런데 어쩌다 SNS으로 내 삶이 피폐 했을까?


그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일’ 하는 사진을 보고서 부터다. 졸업을 한 나의 같은 학번들이 활동 하는 모습 부터다. ‘나도 졸업을 하고 다른길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갔다면, 저렇게 일을 했을텐데’, ‘내가 더 감각있게 할 수 있을텐데’, ‘기회주의자라 생각했던 저 인간이 인정받고있네’, ‘나도 쟤 처럼 일하고 있었으면 더 여유있는 생활을 누렸을까?’ 등 이런 생각이 나를 갉아먹었다. 나의 선택이였다. 내가 다른일을 시도한건 그 누구에게 욕할수도 책임지라 말할수도 없다. 근데 왜 난 그랬을까? (실은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sna을 자주 들어가지 않는다) 나의 선택에 나는 왜 후회하며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고 SNS만 보며 질투하고 욕하고 부끄러워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다시 그 친구들의 일로 가지는 않을것 같은데 말이다.


누구에게는 자주 해외여행 가는 모습이, 누구에게는 파인다이닝과 특급호텔을 들락날락 하는 모습이, 누구에게는 명품을 입고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는 모습이. 부러운 존재 일 수 있다. 난 그것이 그저 같은 동기들이 ‘일’ 하는 모습이 부러웠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플러스. 나와 현실이 동떨어져있는 일이면 선망의 대상이 되겠지만 동떨어져있지 않는, 어쩌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건 나 자신을 더 무너뜨리게 한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선택한 이유는 사라지고 만다. 그 자리는 나도 할수 있는데 나는 지금 왜 이러나 라는 자책과 내 스스로의 멸시만 할 뿐이다. 그래서 계속 ‘나’에게 합리화를 한다. “뭐, 저래도 뭔가 힘든게 있을꺼야. 분명해.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지 않을꺼야”라는 합리화. 이 합리화는 좋은 합리화가 아니다. 나를 욕하고 남을 욕하는 합리화다. 순수성 제로.

처음부터 남을 판단하고 단정짓게 만드는 첫 걸음이 된다. 그 첫 걸음이 커지면 악플로 아니면 유언비언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잠자는 밤. 조용한 밤이 되면 나는 그런 나의 행동에 모순에 빠진다.


누구나 쿨내나는 멋진 인정과 나에 대해 객관화 하여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멋진 인간이길 꿈꾼다. 하지만 지금 내 행동은 그 반대 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맙게도 악성댓글이나 유언비언 또는 뒷담화까지는 가지 않았다. 단지, 혼자 욕하고 혼자 합리화 했을 뿐이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자, 이러다간 쿨한 인간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잠시 SNS을 접었다. 기사는 뉴스로만 나의 일상은 나 혼자서 즐기기. 그러더니 다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신감으로 다시 SNS을 어플을 눌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모든걸 그냥 보이는대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근데 오묘하게 다시 나도 모르는 부러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와 전공으로 석사를 들어간 친구, 일과 함께 병행하는 모습’ ‘ 유명매거진에 실린 친구의 인터뷰’ 등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오히려 나에게 그 모습이 부러움이면서도 촉진제를 당겼다. 저 잘란 친구들의 삶과 내 삶의 차이는 뭘까나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내가 나름 성공했다면 내가 SNS에 자랑하고 싶은 사진과 내용은 뭘까.


나는 이제 ‘나’의 합리화에서 ‘나를’위한 합리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일상과 목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순간 우스운것들 까지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허세가득한 사람이 당연 허세가득한 사진만 올릴텐데 왜 난 저 인간에게 부러움을 봤는지. 웃길뿐이다. 조금만 생각하고 알아보니 진짜 자신이만든 일도 아닌데 꼭 자기가 다한 능력자 처럼 포장해서 자랑하는 사람또한 있었다.


왜 난 저런거에 내 자신을 휩쓸렸는지. 씁쓸하면서도 그때의 난 그랬던 것 같다. 혼동의시기 내 전공과 다른 일을 한다는것에 대한 두려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래. 그런 나의 두려움들이 어쩌면 SNS의 자랑거리들을 보면서 사실을 외면한채 그 테두리에 얽혀 나를 조아온것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나름. 나를 더 열심히 살라고 붇돋아 주는 부분이 생겼기에. 여튼. 난 SNS만이 갖고 있는 무기.에 공격당했다. 그리고 피하지도 맞서싸우지도 않았다. 무기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


그러니, 그런 자랑거리에 내 자존감 까지 휩쓸리지 말길. 이 냉담한 현실에 열심히 사는 내 모습 자체가 멋지고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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