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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9. 2017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남들은 다 잘하는 그러나 나만 못하는 것들.

나는 곰손이다.

손재주가 별로 없는 데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걸 좋아하질 않아서 그나마 있던 실력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나와 반대로 남편은 금손이면 좋으련만, 나보다 더 심한 곰손이다.


며칠 전, 그런 곰 두 마리가 일을 냈다.

형광등을 켜는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나갔다. 새 램프로 교체했는데 여전히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램프 교체에 관한 온갖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램프를 교체하는 동영상부터 아예 형광등 자체를 교체하는 동영상까지 없는 게 없었다. 우리같이 평범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집안을 꾸미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은 게 많았다. 정보를 찾아볼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같은 곰손들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비슷한 상황의 정보를 찾아보고 램프가 아닌 안전기의 문제라 판단하고 새 안전기를 사다 갈았다. 전선 피복 벗기는 것도 쩔쩔매며 동영상에 나온 대로 파란 선, 빨간 선을 연결하여 교체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오래된 등의 문제라 결론을 내리고 동영상에서 가르쳐준 대로 새 등으로 교체를 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했다고 만족하며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불꽃이 번쩍이며 불이 붙었다.

급히 차단기를 내려 큰 불은 나지 않았지만 스위치는 검게 그을려 펑하며 어디론가 튀어 나가고 천장에선 불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던 남편의 손에 새카맣게 그을음이 묻어있었다. 불이 또 날까 무서워서 차단기를 올리기 두려웠다. 이쯤 되니 인터넷 정보를 믿고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전기 전문가를 불러 등을 새로 교체하기로 했다.


얼마 후 방문한 전문가 아저씨께서는 우리의 대형 사고를 보시곤 허허 웃으셨다.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수리를 다 해주시곤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거 손쉽게 고친다고 남편한테 이런 거하나 못하냐고 말하지 마세요.
못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요새 셀프 인테리어가 대세이다.

간단한 가구 조립은 기본이고, 재단부터 조립, 색칠, 배치까지 스스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게 꾸민 집을 공개하고, 만드는 방법과 들어간 비용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넘쳐난다. 그런 사이트를 보면서 동경했던 것이 사실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즐거움까지 얻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방을 구경하고 그들이 하는 도배나, 전기작업 같은 것도 유심히 눈여겨보곤 했었다. 아마도 그런 대리만족이 커지면서 나도 저들의 손재주 영역으로 넘어가 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말을 듣고 이것저것 따라 하기 시작했다.


페인트 칠하는 법을 보며 따라 했고, 그들이 사용했다던 이** 가구를 사러 먼 길을 달려가고, 열심히 조립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공간을 사진 찍어 셀프 인테리어 카페에 올리고 싶었는데 전혀 예쁘지 않았다. 꽃이라도 한 송이 올려놔야 분위기가 살까 싶었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문제는 그들 사진 속에는 보이지 않는 진정한 살림살이들이었다.

쌓여있는 빨래 더미, 설거지해놓은 그릇들, 베란다에 걸려 있는 빨래, 비에 젖은 길을 걸어 흙 범벅이 되어 있는 현관 바닥. 진짜 살아가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지럽게 흩어진 잡동사니들은 셀프 인테리어 사진엔 담겨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예쁜 집 만드는 것을 포기했다.

사진은 한 부분만을 찍을 순 있겠지만 내 눈은 전체를 볼 수밖에 없기에 그냥 마음 편안하게 살기로 했다.





전기 기술자 아저씨의 말씀이 옳다. 전기 공사마저 제 손으로 하는 셀프 인테리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분명 수많은 경험이나 전문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분의 모습을 보고 판단했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 심지어 그렇게 우리 손으로 해야만 하는 거라고 믿었다.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게 때론 어리석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보기에 멋진 사진도 전체가 아닌 일부분일 텐데 그것을 전체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시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전구 갈다 불까지 낼뻔한 곰손, 예쁘다는 가구를 갖다 놓아도 제때 치우지 않아 헝클어진 모습대로 사는 그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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