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Mar 28. 2017

내 발 붙일 곳은 어디에


결혼한 지 고작 3년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참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결혼하면서 서울 동쪽에서 서쪽 끝으로 거취를 옮겼다. 오랫동안 머문 곳을 떠나니 별거 아닌 일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주민센터를 가려해도 지도 어플 없이 찾아갈 수 없었고, 대형 슈퍼마켓을 찾으러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 살던 곳에선 하나 둘 떠나도 남아있는 친구들이 있어 언제든 퇴근길에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시집 온 낯선 동네에선 친구가 없었다. 남편이 언제 집에 오나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달간 낯선 신혼집에서의 생활을 하다 몸의 병과 마음의 울적함을 벗어내려 세계 곳곳을 떠다녔다. 나를 외롭게 만들던 낯선 동네를 떠나면 더 좋은 곳과 사람을 만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다니는 즐거움도 잠시, 중미로 옮겨가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맞았다. 스프링이 튀어나온 싸구려 침대에 누울 때마다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폭신한 우리 집 침대가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외롭다고 구시렁거리었는데 여행을 나가보니 아는 사람은커녕 아무라도 좋으니 한국말이 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바뀌니 이전 상황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안락한 집에 돌아오니 결혼한 지 벌써 1년 반이 흘러있었다. 세계 여러 곳의 숙소를 체험하고 오니 집보다 좋은 곳이 없었고, 지도도 없고 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살아남다 보니 이정표를 읽을 수 있는 대한민국은 어딜 가도 어려울 게 없었다. 그렇게 싫던 신혼집이 너무나도 완벽했다.

 이대로 편안하게 쭉 살 줄 알았다….


여행을 마치고 몸이 너무나 아팠다. 견딜 수 없는 통증으로 밤새워 울자 우리는 이 편안한 보금자리를 다시 떠나 공기 좋은 시골로 가 몸조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벌써 세 번째,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 지인들과는 더 만나기 힘든, 동네에 또래는 한 명도 없는, 구멍가게를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그런 시골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전에 낯선 곳으로 떠나본 경험 덕분일까? 의외로 시골에 잘 적응했다. 젊은 사람 보기 힘든 동네라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동네에 뭐가 있는 게 없으니 어딜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서울에서보다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고 삶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2년을 몸을 돌보며 살았다. 나는 거기서 집도 짓고 아이도 낳고 농사도 지으며 살 줄 알았다. 

더 이상의 이사는 없을 줄 알았다….



그놈의 꿈이 문제였다. 가슴에 이거 안 하면 평생 한이 맺힐 것 같은 꿈. 우리에게 세계여행이 그러했고,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게 그러했듯, 남편은 서점을 하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었다.  나는 시골을 떠나는 것이 싫고 두려웠지만 어찌하겠는가. 간절한 꿈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결국 네 번째 짐을 싸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결국 신혼집을 차렸던 동네에 다시 이사 왔다. 3년이 지나서야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홀로 외로워하지 말고 내가 속할 곳을 찾아보자 다짐했다. 마을에서 열리는 모임에도 참석하고 동네 작가 선생님을 찾아가 술도 한잔 얻어먹고 사람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기타도 배웠다. 그러자 내가 속해있는 곳이 제법 많아졌다.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사는 곳이 다르게 보였다. 집 주변을 넘어가질 못했던 내가 동네 사람들 덕분에 더 넓은 곳까지, 숨겨진 좋은 곳까지 찾아가게 되었고, 내가 아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재미있는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곳 사람이 된 것이었다. 



며칠 전, 남편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서점의 꿈을 여기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루게 되었다고. 

아니 다섯 번째 짐을 싸자고? 난 못해!


“나 여기서 기타 치고 운동해야 해. 난 못 가.”

나는 서러움에 울어버렸다. 운동이나 기타를 배우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 사람들과 이 익숙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건 아마도 약간 먼 곳으로 이사를 해도 전학만을 갈 수 없어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학생의 심정과도 같을 것이다. 배우는 것이야 같겠지만 이 친구들, 이 교실, 이 책상을 버릴 수 없는 그런 마음. 



내가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어떤 지위나 역할을 부여받아서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생기는 것이다. 서로 함께 할 때 마음이 오고 간다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이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나는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사는 곳이,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중요하다. 어쩌면 이런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싶어 여행을 떠나고 귀촌을 하며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정작 멀리가 아니라 가까이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채 말이다. 



결국 나는 다섯 번째 짐을 싸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좀 멀어진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느라 힘이 들것이다. 고생하는 모습에 너무나 미안하지만 가슴에 사그라들지 않는 꿈을 위해선 어느 정도 힘든 것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3년 반 만에 마침내 나는 고향이 생긴 것 같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움의 유효기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