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동네에 사는 지인의 SNS에는 벌써 골목을 환하게 뒤덮은 벚꽃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을 보고서야 정말로 꽃이 만개하는 봄이 왔음을 실감했다. 인터넷에선 벚꽃 개화시기와 지역 꽃 축제 날짜를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진 지도가 급속도로 전달되고 있었다.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제야 내게도 전해졌다.
십여 년 전, 창원에 사는 언니가 진해 군항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의 풍경과 벅찬 봄의 아름다움을 어찌나 생생하게 이야기해주던지 가보지 않고도 간 것처럼 설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 바람에 머리를 찰랑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보리라. 반드시 군항제에 가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게 벌써 십 년이 훨씬 지나버린 일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진해 군항제는커녕 여의도 벚꽃축제에도 가보지 않은,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불성실하게 흘려보내는 무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는 꽃 축제에 가본 적이 없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여의도 벚꽃놀이도 못 가보았고 집 근처에 있던 어린이 대공원의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그것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작년에 참여한 문화기행 일정 중에 여수 벚꽃축제장이 있었지만 허탕이었다. 꽃이 하나도 피질 않아 사진 하나 찍지 못하고 돌아왔다. 먼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마주친 시끄럽게 울려대던 각설이 공연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는 따뜻하여 벚꽃이 일찍 개화할 것이라고, 정말 아름다운 벚꽃축제가 될 것이라고 연일 정보가 올라오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꽃구경 갔다 사람 구경만 하고, 꽃나무는 높아서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꽃이야 매년 피는 것이니까 내년에 봐도 괜찮을 것 같고, 꽃 모양이야 매해 봐도 똑같으니까, 전문가들이 멋있게 찍어준 사진을 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는 꽃 축제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어댔다.
그러나 여전히 작은 꽃망울이 터지며 내는 지독한 달콤함에 매료되어 먼길을 달려가거나, 집 앞 어귀에 핀 꽃을 사진에 담아 미소 짓고, 사람이 가득하여 사진 찍기도 어려운 길을 걷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왜 매년 똑같이 찾아오는 꽃망울을 기다리는 것일까? 겨울 동안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게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려고, 혹은 이토록 가득한 꽃을 볼 날이 일 년 중 며칠밖에 되지 않으니까 보러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흰색 물감을 가득 타 뽀얗게 변한듯한 연한 핑크 색의 꽃이 진짜 아름다워서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비한 색의 꽃이 눈처럼 흩어지는 나무 아래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 거란 판타지가 모두의 가슴에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작 십여 년 만에 내 가슴속에서 그런 판타지는 사라진 모양이다. 그런 아름다운 눈꽃이 내리는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는 생각보다 주차장이 꽉 막힐 것을 걱정하는 것을 보니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왜 아름다움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지, 문득 지금 내리는 꽃바람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지우개를 하나 꺼내 놓고 꽃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차례로 지워본다.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든 거리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그 아래 당신과 나만 남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꼭 벚꽃축제를 가야겠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