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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31. 2017

봄, 벚꽃, 그리고 당신

남쪽 동네에 사는 지인의 SNS에는 벌써 골목을 환하게 뒤덮은 벚꽃사진이 올라왔다. 사진을 보고서야 정말로 꽃이 만개하는 봄이 왔음을 실감했다. 인터넷에선 벚꽃 개화시기와 지역 꽃 축제 날짜를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진 지도가 급속도로 전달되고 있었다.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제야 내게도 전해졌다.


십여 년 전, 창원에 사는 언니가 진해 군항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의 풍경과 벅찬 봄의 아름다움을 어찌나 생생하게 이야기해주던지 가보지 않고도 간 것처럼 설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 바람에 머리를 찰랑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보리라. 반드시 군항제에 가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게 벌써 십 년이 훨씬 지나버린 일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진해 군항제는커녕 여의도 벚꽃축제에도 가보지 않은,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불성실하게 흘려보내는 무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는 꽃 축제에 가본 적이 없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여의도 벚꽃놀이도 못 가보았고 집 근처에 있던 어린이 대공원의 벚꽃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그것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작년에 참여한 문화기행 일정 중에 여수 벚꽃축제장이 있었지만 허탕이었다. 꽃이 하나도 피질 않아 사진 하나 찍지 못하고 돌아왔다. 먼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마주친 시끄럽게 울려대던 각설이 공연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올해는 따뜻하여 벚꽃이 일찍 개화할 것이라고, 정말 아름다운 벚꽃축제가 될 것이라고 연일 정보가 올라오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질 않았다. 꽃구경 갔다 사람 구경만 하고, 꽃나무는 높아서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꽃이야 매년 피는 것이니까 내년에 봐도 괜찮을 것 같고, 꽃 모양이야 매해 봐도 똑같으니까, 전문가들이 멋있게 찍어준 사진을 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는 꽃 축제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어댔다.


그러나 여전히 작은 꽃망울이 터지며 내는 지독한 달콤함에 매료되어 먼길을 달려가거나, 집 앞 어귀에 핀 꽃을 사진에 담아 미소 짓고, 사람이 가득하여 사진 찍기도 어려운 길을 걷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왜 매년 똑같이 찾아오는 꽃망울을 기다리는 것일까? 겨울 동안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게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려고, 혹은 이토록 가득한 꽃을 볼 날이 일 년 중 며칠밖에 되지 않으니까 보러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흰색 물감을 가득 타 뽀얗게 변한듯한 연한 핑크 색의 꽃이 진짜 아름다워서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비한 색의 꽃이 눈처럼 흩어지는 나무 아래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 거란 판타지가 모두의 가슴에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작 십여 년 만에 내 가슴속에서 그런 판타지는 사라진 모양이다. 그런 아름다운 눈꽃이 내리는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는 생각보다 주차장이 꽉 막힐 것을 걱정하는 것을 보니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왜 아름다움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는지, 문득 지금 내리는 꽃바람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지우개를 하나 꺼내 놓고 꽃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차례로 지워본다.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든 거리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 꽃잎이 눈처럼 날리고 그 아래 당신과 나만 남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꼭 벚꽃축제를 가야겠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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