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난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 물으면 난 잠깐 고민하다 답한다.
그냥 노는 사람이요.
정확하게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지 대략 삼 년이 넘었다.
아파서 쉬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그렇다고 3년 내내 놀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약간 억울한 게 있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여행자로 살아도 봤고 책을 쓰기도 했고 요새도 노는 시간 빼곤 내내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무의미하게 몇 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했다. 상대방의 명함을 받으면 나는 줄 것이 없어 멋쩍은 손을 만지작거리곤 했었다.
여행 중 많은 국경을 넘어다닐 때마다 고민이 깊어졌다. 입국심사 카드에 적어야 하는 직업 때문이었다.
내 직업이 무엇인지 정말로 확인할 것도 아닌데 뭐라 써야 할지 한참을 고심했다. 의사, 간호사, 교사, 변호사처럼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이면 쓰기도 좋을 텐데, 사무직을 딱 표현할 단어는 무엇일지, 백수는 무엇이라 써야 하는지, 현재 나는 여행자인데 여행자라 쓰면 안 되는 건지 고민을 하곤 했다. 몇 번의 국경을 넘으며 이런 무의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깔끔하게 한 단어로 쓸 수 있는 직업을 골라 썼다. 입국 심사대에 설 때, 그 누구도 나의 직업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속된 곳이 없으면 나를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없다는 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보통 때와 똑같이 그냥 놀고 있다고 말했는데 "글을 쓰는데 그게 왜 노는 건가요?" 란 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루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나를 가장 많이 채워주고 있는 이 일을 나의 업이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다양한 경험을 해봤고 많은 직업을 가져봤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의 일을 찾아 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어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일로 나를 표현해야만 하는 것일까. 지금의 나를 설명하자면 열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단어가 필요한데 왜 나를 백수라 소개했을까.
앞으로 쓰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하고 있는 일들로 나를 표현해야만 한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다 적어 놓은 명함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 묻거든 그런 명함을 내밀며
전 직업이 많아요.
라고 답해야겠다.
"소속감이 나를 완전하게 하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도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