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아직도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 굳게 믿고 있다.
몇 년 전 원인도 없이 속이 아픈 것이 나아지질 않자 의사선생님은 단호한 표정으로 내게 신신당부했다.
“이건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해요.”
나는 그걸 몰라서 여기 왔을까 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더 스트레스네요.”
답은 병원에도 없었고, 명의에게도 없었다. 오로지 내 손아귀에 달려있었다.
#2
지난 달 거의 3주 가까이 위염을 앓았다. 내시경 촬영도 해봤지만 약간의 염증밖에 없는데도 몸은 쉬이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친절한 의사선생님께서 나에게 속을 털어 놓으라 말씀하셨다. 약보단 말이 더 필요했던 상황이라 보셨던 거다.
“사실은요…”로 운을 떼자 그 동안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맥주를 막 마셨거든요……”
원인을 찾자 선생님은 빙긋 웃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그렇게 바쁜 선생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새로 지은 약을 받아오자 거짓말처럼 금새 나았다.
나도 알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머릿속에 맴돌자 몸이 힘겨웠던 모양이다.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발견해 뱉어내야만 했다. 상황을 스트레스라 인식하는것과 그 놈의 화를 가라앉혀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3
주말부부 되기를 자청해놓고 막상 떨어져 살 집을 구하러 가니 물만 먹어도 속이 꽉 막혔다.
담아 두고 있으면 안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난 괜찮다고 했는데 무의식은 그렇지 않나 봐. 겁나나 봐. 속상한가 봐.”
이야기를 하며 내 감정을 계속해서 들여다 본다. 나는 아닐 거라 부정했던 밑바닥에 깔린 감정들이 겨우 보인다.
‘그래, 속이 상했구나.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짜증나는구나. 그래, 그러는 게 당연한 거야. 그냥 화를 내자. 원망도 하기도 하고. 그러고 빨리 털어 내자. 새로운 생활이 나를 더 신나게 만들어 줄 거야.’
애써 다독여도 막힌 속은 쉽게 뻥 뚫리진 않는다. 그래도 며칠 아플게 고작 두어 시간 만에 끝났다. 스스로 다독이는 것도 큰 위로가 된다.
#4
선택형 장애라는 병이 있다. 흔히 홧병이라 말하는 병인데 스트레스가 신체에 영향을 주어 통증을 유발하는 병을 말한다.
유독 잘 체하는 위가 약한 체질이라 생각했는데 아마 나도 이런 병이 있는 모양이다. 역시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나처럼 잘 웃고 울며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트레스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참고 살고 있을까.
달리고, 먹고, 웃고, 홀로 여행을 하고, 노래를부르고,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청소를 하고… 모두다 제각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기를 쓴다. 글은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농밀한 위로가 된다. 내 감정이 문자로 표현되었을 때, 마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처럼 새롭고 놀랍다.
'나는 이런사람이었구나, 이런 감정을 담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내 깊은 곳에 있던 서러움이 조금씩 사라진다.
스트레스는 어떤 행동으로 완전히 잊혀지고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끊임없이 찾아내서 살살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고 웃겨도 보면서 내 마음이 다시 원래 자리를 찾게 애써야 하는 것이다.
내가 쓴 글 속에서 스트레스의 흔적을 찾아본다. 참으로 아이 같은 녀석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아이 같은. 자주 보면 귀찮으니 이따금씩 만났으면 좋겠다고 마음에게 조용히 고백한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