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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Apr 24. 2017

혼술 하기 좋은 곳이란


혼밥, 혼술 등 혼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딴 신조어들이 연신 검색 순위에 오르내린다. 그런 검색어를 볼 때마다 1인 가구 시대에 돌입했음을 실감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일과 시간을 사람들과 얽혀 지내고 나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야 할 이유는 상당히 많다. 지방에 출장을 가거나 늦은 시간 갑자기 술을 먹고 싶다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혼술, 혼밥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따지면 혼자 먹는 행위는 요즘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있어 왔던 것이었다. 혼자 오는 손님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런 검색어가 연신 순위에 오르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혼술 예찬자이다.


예전엔 혼자 술 먹는 장소의 대명사는 포장마차였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닭똥집 하나, 소주 한 병을 시켜 놓으면 어묵을 서비스로 주시면서 말벗을 자청해주는 사장님 덕분에 맛있고 외롭지 않은 혼술을 즐길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골목마다 있던 포장마차가 하나둘씩 사라지자 퇴근길에 갑자기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난감해졌다.


결국 포장마차의 자리는 편의점이 대신했고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간편한 안주거리와 맥주를 들고 아무 대답도 없는 벽을 보며 술을 마셔야 했다. 세상에 이렇게 심심하고 맛없는 술자리가 또 있을까. 알코올을 몸에 흡수시키기 위해 술 먹는 것이 아니라 잠깐의 기분전환을 위해 술을 마시는 나로서는 이처럼 재미없는 술자리가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퇴근길에 편의점 대신 가까운 호프집에 들르는 것이 더 좋겠다 생각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퇴근길에 홀로 일본식 술집에 들어가자 직원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일행은요?”

“혼자인데요.”

여자 혼자 꼬치에 술을 마시는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모두 다 나를 기웃거리며 쳐다봤다.


이런 상황이 너무 어색하여 다음번엔 혼술을 하기 위해 해장국 집에 갔다. 홀로 앉은 아저씨들 뒤로 나도 혼자 앉아 해장국과 소주를 마셨다. 모두 다 티브이에 나오는 딱딱한 뉴스를 보며 국밥 한 숟가락과 소주 한 모금을 마셨다. 갑자기 20년은 늙어진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다음번에는 해장국은 안 되겠다 싶어 우아하게 칵테일이나 마셔볼까 하여 바에 들어갔는데 모두 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봤다. 짧은 스커트에 딱 달라붙은 옷을 입은 아가씨들이 군데군데 서있었다. 일하는 직원 말고는 모두 남자들이었다. 거의 대부분 혼자 앉아있었다. 나도 놀라고 직원도 놀라 황당한 얼굴로 서있자 직원은

“일행은요?”라고 물었다.

“잘못 찾아왔네요.”라고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술 마실 공간이 없었다.


그 후론 밖에선 혼술을 거의 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술이 한잔 먹고 싶으면 이곳저곳 전화해 친구를 불러내거나 외롭지만 편의점을 이용해 집에서 마셨다. 자주 가던 포장마차 사장님의 어묵 국물이 간절히 생각나는 밤이 여러 번 지났다.

그런 면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면 아무런 눈치 볼 필요 없이 먹고 싶은 것과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왜 동네에선 이렇게 편안한 문화를 즐길 수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 길을 걷다 문득 카페에 들어섰는데 다양한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밖을 바라보았다. 카페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내 발아래서 과자라도 떨어지길 기다리듯 턱을 괴고 있다. 혼자 마셔도 외롭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음, 혼술 하기 좋은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라고 생각하다 혼술 하기 좋은 곳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지 생각했다.

인터넷에 나온 혼술 하기 좋은 곳을 정말 혼자 간 사람이 포스팅하는지 궁금했다. 대부분 사진 속에 2-3개의 잔이 보였다. 위치도 후미진 우리 집 골목 앞이 아닌 핫플레이스로 뜨는 곳에 있었다.

'혼자 술 먹으러 저기까지 가는 사람이 어딨어...'


혼술을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이유 없이 마신다고 본다. 그저 갑자기 먹고 싶은 거다. 퇴근길에 유난히 지쳐서일 수도 있고, 지나가다 너무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서, 배가 고파서, 티비에서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먹고 싶어서.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 갑작스러운 요구를 받아내야 하는 것이 혼술 하기 적당한 곳인데, 거기가 집에서 무려 30분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면 갈 수 있겠나.


갑자기 술을 한 잔 마시고 싶어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정작 우리 집 앞에는 혼술 하기 좋은 곳이 없었다.

골목길에 맛있고 분위기 좋은 가게가 생기길 기대해보다가, 그보다 내가 들어가고 싶은 곳에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는 문화가 보편화되길 먼저 기대해본다. 그중  왜 혼자 왔지 하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바뀌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외국에선 혼자 밥을 먹든, 술을 먹든 편안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혼자 오든 열이 오든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는 것, 그저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려고 하는 것. 나 역시 혼자든 함께든 어색해하지 않는 것. 이런 문화가 필요했다.


다음번엔 혼술이 생각날 땐 집 앞 치킨 집을 한번 가볼까 한다. 동네에 분위기 괜찮은 그런 가게가 없으니 편하게 내가 먹고 싶은걸 먹으면 되지 않을까. 자꾸 가다 보면 나도,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지 않을까. 분위기 좋은 가게보단 어디든 혼자 먹기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다. 남들 바뀌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편하게 마음먹고 즐기는게 우선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하는 이 시간,
그 시간 속의 일상과 단면을
이야기하다.
그리다.
나누다.
 writing_ jinhee  X  drawing_ pa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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