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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18. 2020

병실 단상

드디어 작은 수술을 마쳤다. 병실에서 누워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길, 수술실에 막 들어가면 보이는 장비들과 분주한 의료진, 이 두 과정이 사실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침대 카트에 실려 이동하면 가족들이 울며 함께 뛰어가고 “꼭 살아야 해!”같은 대사를 하며 마지막 손길이 사라진다. 그런데 별로 드라마틱하진 않다. 그저 그 순간 내가 진짜 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착잡하긴 하다. 걸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가는 곳이 수술실이고 온 몸에 여러 관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으니 거동도 불편하여 그냥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제 잠드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들은 후에, 거세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잠을 깨우려 뺨을 두드리는 손, 그리고 극심한 추위가 느껴졌다. 세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여기는 회복실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발목을 움직여보았다. 아직 기운이 없어 세게 움직일 수 없지만 확실히 발목이 까딱까딱 움직였다.

휴... 다 잘되었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번 수술은 규모가 크지 않아 어렵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살짝 겁이 났던 건 전부터 계속 들어왔던 장애 가능성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문제 있는 척추뼈와 그 근처의 골반 절반을 잘라내자 했다. 마비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배변 장애는 거의 확실히 생길 것 같다고 했다. 평생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하지 말자고 하여 7년을 추적 관찰하다 간단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 문제 되는 뼈의 종양만 태워 없애 버린 것이다. 수술 전 MRI 사진을 보니 신경과 종양이 많이 가까이 있었다. 최악의 가정으로 신경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발목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발목을 움직여본 것이다. 아프지만 움직였다. 장애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회복실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몸이 들썩거릴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수술부위 통증도 강하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왜 병이 생겨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한탄을 하거나 무섭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프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 고통 금방 지나간다고, 이 아픔 몇 날 며칠 이어지는 게 아닌 잠시 스치는 것이라고 다독였다. 지나가는 고통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나면 더 좋은 미래가 찾아와 있는 게 보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성당에는 자주 안 가지만 종교를 갖고 있다. 어떤 것이라도 붙잡고 기대야 할 때 기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절망 속에 빠지지 않게 하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요가는 몸으로 하는 스스로의 기도라고 생각한다.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스스로 고통도 스쳐지나 보낼 수 있게 몸의 변화나 자극을 받아들이고 보내는 방법을 깨닫게 해 준다. 통증이 극심한 순간 가장 힘들었던 요가 아사나를 생각했다. 그때의 고통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날만큼 지나갔으니 이것도 다 지나갈 거라고 다독인다.


무척 추운 겨울이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사람들 사이에 온기도 줄어들었다. 모두 불안과 불신으로 꽁꽁 매고 두려워한다. 곧 책방을 다시 열 텐데 어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 역시 지나가리라, 지금의 추운 마음이 봄에는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안부를 묻는 수많은 메시지를 보며 더 힘을 내야지, 더 사랑해야지, 몇 배로 나누며 살아야지 다짐하게 하는 밤이다. 몸은 힘들고 추워도 마음은 온기로 가득하다. 모두에게 다 잘 될 것이라고 오늘은 내가 대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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