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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19. 2020

병실 단상 2

5인실에 배정받아 입원을 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전부 커튼을 치고 있어 옆에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배정받은 침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 입원했을 때는 옆 침대 환우분이나 보호자 분들과 얘기도 나누고 먹을게 많으면 나눠먹기도 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종종 있었다. 코로나가 아픔을 겪는 사람들간의 소소한 정마저도 갈라놓는 것 같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모이고 아픔을 이겨내는 공간이다 보니 힘들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간다.


옆에 계신 할머니는 바로 전날 수술을 마친 것 같았다. 통증이 가장 극심할 때여서 많이 괴로워하셨다. 몸이 힘들다 보니 이것저것 투정 부리는 게 많아 보였다. 할머니를 간병하고 계신 분은 딸이었는데 어린아이 다루듯 엄마의 투정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할머니: 아이고, 그냥 죽어야지.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살 수 없지. 죽고 싶다.

딸: 엄마, 살고 싶어 하는 거 다 티 난다. 왜 그런 소리해? 그럼 나 힘들어. 자꾸 그러면 나 집에 간다.

할머니: ....(조용해짐)

힘들어 살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던 때에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살기 싫다던 할머니는 침대를 세워달라고 하며 식사 준비를 하셨고 딸은 엄마의 회복을 위해 더 드시고 싶은 게 없는지 살뜰히 살폈다.

할머니: 입이 까끌해서 못 먹겠다.

딸: 그래? 그럼 내가 죽 사 올까? 무슨 죽 먹을래?

할머니: 지금 같은 땐... 라면이 딱이다. 라면 먹고 싶다.

딸: (버럭) 세상에 수술한 환자가 라면 달라는 경우가 어딨어!


할머니가 밤새 아파하시는 걸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라면을 달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살기 싫게 고통스러워도 먹고 싶은 건 있는 모양이다. 라면에 살고자 하는 따뜻한 의지가 느껴졌다.


다음날 앞 병상에 또 다른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옆 할머니와 달리 매우 긍정적인 분이셨다. 수술 안내하는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전에 수술 이력과 병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어디서 아프다고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십 번의 수술, 장애, 후유증, 여러 지병들이 곂쳐 이야기를 끝내는데만 수십 분이 걸릴 정도였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의사 선생님이 수술 후 3일을 앉아서 자야 한다고 얘기했다. 나 같으면 한숨부터 나올 상황인데, 할머니께선 매우 긍정적으로 잘 될 거니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커튼 너머의 할머니를 꼭 뵙고 싶었다. 힘내시라고 잘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마치고 돌아가자, 보호자로 있던 딸에게 배고프냐며 반찬을 꺼내 밥을 차려 주렸다. 집에서 반찬을 챙겨 오신 모양이다.

할머니: 이 장조림 좀 먹어봐. 고기를 안 찢고 만들었는데 진짜 맛있어. 갈 때 좀 가져가라.

할머니: ㅇㅇ한테 전화해서 추우니까 두꺼운 이불 꺼내 자라고 해라.

 

할머니께서는 내일 큰 수술을 앞두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식들 반찬과 이부자리 걱정을 하고 있았다. 나는 이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잘될 거라고 굳게 믿고 사소한 일상 걱정을 하며 잠이 들 수 있을까. 저렇게 긍정적이고 강한 분이라면 어려운 수술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그 따뜻함 마음 오래오래 많은 분들과 나누시길 기도했다.


아프니 어린아이가 돼버린 엄마, 그 맘을 나무라지 않고 받아주는 딸. 힘든 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자식에게 반찬 하나 더 챙겨주는 엄마.

병은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하게 만들지만 그 속에서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픔이 무사히 끝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 힘들더라도 곁에 더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이 고통의 신음 아래에서 솟아오른다. 모두 이 아픈 잠시 이겨내고 절망이 희망이 되는 기쁨을 맞이하시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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