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차: 요가 망친날 >
36일 차의 요가 일지이다. 일단 지금 너무 피곤하다. 이 글을 쓰지 말고 그냥 하루 쉬어 버릴까 싶다 가도 아까 느꼈던 감정이라든지 몸의 감각들이 내일이면 희석이 될 것 같아 궁둥이 꾹 붙이고 앉아 타자를 토독토독 두들겨본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 최근 2-3일간 나는 줄곧 긴장 상태다. 정확히는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몸에 힘이 부쩍 들어가 있다. 릴렉싱 하러 갔던 여행인데 돌아올 땐 무언가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돌아왔나 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목표가 생겼는데 나에겐 그 목표를 이룰 능력의 밀도도 경험치도 부족하기에 조바심이 난 거다. 목표는 빨리 이루고 싶고 능력은 안 되는, 한마디로 욕심이 자라난 것.
욕심이 뇌를 지배하면 몸도 굳나 보다. 꿈도 다시 압박을 받는 모습의 꿈을 자주 꾼다. 자고 일어나면 너무 피곤하다. 머리를 비우고 몸의 명상을 위해 요가를 한다던 다른 때와는 달리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요가를 하면서 생각 정리 좀 하자. 차분하게 하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이런 흐름으로 시작한 오늘의 요가. 과연 어땠을까? 맞다. 잘 되었을 리가 없다. 무진장 헤맸고 버둥대던, 우스꽝스러운 날이었다. 평소보다 더 비틀거렸고 어지러웠다. 균형이 말도 안 되게 잡히지 않았고 요가원에 온 첫 주보다 더 못했다. 아쉬탕가 초급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역시 마음이 문제인가.’
요가를 한다고 했으면서 나는 요가가 아닌 내 생각을 하러 간 거다. 그러니 몸이 자꾸 흔들리고 집중이 되지 않은 것. 아주 아주 멍청한 요가를 하고 왔다. 땀은 무척이나 났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욕심들로 상당히 애를 먹은 시간이었다.
‘한심해…’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다. 수업이 끝나고 요가원을 뒤로하여 집으로 가는 길. 평소와 달리 개운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은 머리서기 자세를 아직도 시도조차 못한다며, 역시 넌 겁쟁이라는 생각에 혼자 또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유독 내가 못하는 것만 떠올린 그런 날이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못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억지로 스스로 위로해 보는데 오늘은 이것도 도통 안 먹힌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따위의 날 선 생각이 스스로를 다시 나무라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다시 본질로 돌아가보자. 이러다간 생각과 그로 인한 자책에 질식할 것 같다. 마음이 어지러울 땐 본질 찾기 연습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요가를 왜 하는 것이며, 글은 왜 쓰고 있는 것이며. 그 밖의 다른 내가 벌인 일들은 왜 계속하고 있는 것인가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조금은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나는 체력 증진과 좀 더 신체적으로 나은 질의 삶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또한 꾸준하게 요가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100일을 채울 목적으로 시작을 했다. 그렇다면 이미 목적에 맞는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본질은 그것이기에 머리서기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거다. 남과 비교하거나 어떤 퀘스트를 깨기 위해 요가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좀 더 내 몸과 친해지고 내 몸을 만나기 위해 요가를 시작한 거니까 이미 그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다.
그래. 나는 이미 잘하고 있어.
내일도 잘할 거다.
<37일 차: 일취월장했네!>
오래간만에 잠을 설쳤다. 우리 집 고양이가 새벽 내내 놀아달라고 보채는 통에 자다 깨어 놀아주느라 영 피곤하다. 하지만 요가는 가야 한다. 지난번 겨울휴가로 너무 길게 요가를 쉬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나 오늘은 일주일 중 제일 많은 힘을 요구하는 원장님의 빈야사 시간! 나는 수면의 질이 하루의 기분과 체력을 크게 좌우하는지라 오늘 요가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허나 짧지만 나름 충실했던 지난 요가시간을 돌아보면 몸의 컨디션에 크게 좌지우지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기에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에너지와 몸상태에 충실하여 동작을 끝까지 맺음을 할지, 아니면 중간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멈춘 채로 동작을 취할지는 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정하면 될 일이다.
아무도 무리해서 동작을 완벽하게 버티며 맺으란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체크하면서 자신에게 맞게 동작을 이어 나가라고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요가선생님들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 가자.’
요가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요가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라? 기초반 수업을 맡아했던 언니가 와 계신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아니 언니가 다시 어쩐 일로…?’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원장님이 오전에 일이 있으셔서 내가 하루 잠깐 맡기로 했어."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그렇다면 오늘은 그렇게까진(입에 피맛이 날 때 까진) 힘든 시간이 아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시간들보다 힘든 동작들이 아니고, 내 체력 분배도 잘 된다면 평소보다 조금 더 과감한 동작에 도전해도 좋겠는걸?’
아직 초보인지라 동작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고, 이제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업 막판에 진행이 된다거나 체력적으로 힘을 많이 뺀 뒤에 이어지는 동작의 경우 힘이 모자라 차마 완성할 엄두가 안나는 것들이 있다. 오늘처럼 조금 여유 있게 진행이 되는 요가시간이라면 그런 것들을 용기 내어 도전해 볼 만할 것 같았다.
오늘 도전해 볼 자세는 '차투랑가 단다아사나'이다. 차투랑가는 하이 플랭크 자세를 한 뒤에 팔꿈치를 90도로 굽히며 몸통을 지면에 가깝게 내리는 동작인데, 이전에도 썼지만 나는 이 동작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늘 있었다. 그러나 복근의 힘도 부족하고 팔의 힘도 부족한지라 배나 가슴부터 힘 없이 철퍼덕하고 내려앉기 일쑤여서 무릎을 먼저 바닥에 대고 상체를 그대로 내리는 것부터 연습을 해왔었다.
그렇게 차투랑가를 해 나간 지 3개월이 되던 어느 날, 집에서 혼자 무릎을 대지 않고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동작이 수월하게 잘 되었다. 물론 아직 힘이 부족해서 세 번 이상의 연속 동작은 무리가 있었지만 오늘 정도의 수업 강도라면 그 정도라도 도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요가 시간에 무릎을 펴고 차투랑가를 시도하게 되었고 별 무리 없이 연속 세 번이나 성공을 했다. 물론 내 모습을 보지는 못하니 꼿꼿하게 정자세로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상 무너짐 없이 잘한 것 같다. 나름 혼자 뿌듯한 채로 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안보는 사이 아주 일취월장했는걸!"
오! 칭찬은 역시 병아리도 춤추게 하나보다. 언니의 칭찬에 기분이 너무 좋아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에 저절로 흥이 붙었다. 나도 모르게 잇몸이 만개해 있었다.
나. 요가가 재밌나 보다. 흐흐.
<38일 차: 해이해졌어>
도대체 요가를 시작하던 햇병아리 시절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이었기에 지금보다 몸이 더 단단했던 걸까? 물론 근육은 처음 시작보단 더 붙은 게 확실하지만 중심을 잡는 힘이라든지 안정감의 면에서는 처음 시작하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비틀거리고 벌벌 떨린다.
한 2-3일 전부터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다. 특히나 아쉬탕가 중간에 선 자세인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라는 자세를 취할 때 이런 증상이 더 나타났다. 이름부터 길고 어려운 이 동작은 내가 배운 서서 하는 동작 중에 제일 어려운 동작 같다.
웃디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는 한 다리로 서서 반대쪽 다리를 들어 올려 들어 올린 쪽 다리의 엄지발가락에 손가락을 걸어 앞으로 쭉 펴서 버티는 동작인데, 나는 아직 초보라 이렇게까지 정식 동작은 하지 못하고 들어 올린 다리의 무릎을 접고 정강이를 손으로 잡아 거의 끌어안은 채 서서 버티는 동작을 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분명 요가 초반엔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잘 되었었는데 지금은 영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거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얇은 나뭇가지 마냥.
‘아. 내가 지금 동작을 한참 잘못하고 있나? 중심이 되는 부위에 힘을 줘야 하는데 뭔가 놓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선생님께서 이렇게 외치신다.
“복부에 힘을 주지 않으면 몸이 벌벌 떨려요. 복부에도 힘을 정확히 주세요!”
앗. 선생님께서 흔들거리는 내 몸뚱이를 발견하신 건가.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나 말고도 많은 회원님들께서 함께 덜덜 떨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근데 그 모습들이 왜 이렇게 인간적이고 귀엽게 보이던지. 속으로 살짝 웃음이 났다.
‘다들 열심히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군!’
나는 다시 스스로의 기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쉬탕가 동작이 초보주제에 익숙해지고 편해졌나 보다. 아직 잘하지도 못하면서 벌써부터 호흡도 놓치고 전반적으로 몸에 긴장을 너무 놓아버려 플로우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익숙하고 편한 게 역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처음 왔을 때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동작 하나하나 놓칠 세라 잔뜩 몸에 힘이 들어가며 호흡도 열심히 하려고 애쓰던 내가 보였다. 역시 요즘 너무 해이해진 거다. 다시 호흡부터 신경 쓰며 기본에 충실해야지. 그래야 다음의 영역으로 넘어갈 것 같다. 너무 바짝 긴장할 필요까진 없고 그저 복부에 힘주고 호흡에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동작을 잘하려는 마음에만 치중했었는데 역시 아직은 아니다.
기본. 기본. 기본에 충실해야지.
<39일 차: 숙취 요가>
'으아아! 죽겠다.'
이 소리는 월요일 아침 아쉬탕가 시작부터 급격히 술이 올라와 숙취와의 싸움으로 내적 신음을 하는 한 인간이 울부짖는 소리이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이런 말을 요가하면서 쓰게 될 줄이야.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이제 술 안 먹는다 내가’라며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걸 또 요가를 하며 속으로 내뱉게 될 줄이야.
전날 겨우 맥주 두 캔 마셨다. 그런데 어제 유독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소주 한두병 정도 먹은 것 같은 뒤끝이다. 자기 컨디션도 못 챙기며 술을 먹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술에 휩쓸려서 다음날 힘들어하는 꼴이라니… 요가가 아침 일찍 있는 스케줄이면 애초에 먹질 말았어야지.' 하며 내면의 관찰자가 기숙사 사감과 같은 모습으로 냉정하게 나무란다. 아. 몸이 힘드니 마음도 시끄럽고 요가도 안된다. 이런 기분이면 하루도 망칠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식이다. 그런데 또 돌아보면 너무 스스로를 빡빡하게 구는 것 같아 안쓰러워서 '아니, 그럴 수도 있지. 겨우 맥주 두 캔인데! 컨디션 안 좋으면 몸이 훅 갈 수도 있지! 자기가 뭐 알고 먹었겠나!' 하며 내 편이 되어주는 말을 또 해본다. 시끄러운 정신상태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하며 내면의 두 관찰자들을 본체인 내가 되려 나무란다.
'일단 말이지.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구. 술을 먹은 건 어제의 지난 일이고 현재 나는 요가를 왔단 말이지. 그렇다면 힘들어도 일단 해야 돼. 그러니까 둘 다 조용히 하렴?'
막바지에 다다랐을까. 누워서 복부를 일으켜 후굴 하는 자세인 '우르드바다누라' 자세를 하고 나니 이젠 숙취에 두통까지 더해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도저히 표정을 부드럽게 지을 수가 없다. 누가 보면 오늘 요가는 혼자 다 한 얼굴이다. 게다가 평소엔 잘하지도 않는 동작이었다. 아직 무릎도 약하고 허리도 유연하지 못해서 우르드바다누라를 요가원 다닌 이후로 시도한 적이 몇 번 안 된다. 여태껏 그전 단계인 브리지 자세에서 버티는 걸로 몸을 다져왔었는데 오늘은 숙취가 판단력도 흐리게 만든 건지 나도 모르게 복부를 부웅~ 일으켜 우르드바다누라를 하고 있는 거였다.
고개가 땅으로 향하니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술이 더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고 있진 않았지만 아마도 얼굴이 벌게졌을 것이다. 다시금 내면의 사감님이 팔짱 낀 손을 풀어 날카로운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조둥이를 달싹거린다.
'그것 봐라…ㅉㅉ… 꼴좋다.'
이에 질세라 다른 천사 같은 관찰자가 맞받아친다.
'말이 좀 심하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 내가 아쉬탕가가 많이 익숙해지긴 했나 보다. 잡생각이 많이 드는 걸 보니. 그런데 이 잡생각들은 동작들에 정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일정한 스텐스로 흐름을 타는 게 아닌 같은 동작이라도 첫 번째엔 오른쪽에 힘이 더 들어가고 두 번째엔 왼쪽에 힘이 더 들어가는 등 이랬다 저랬다 난리 부르스의 요가였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가는… 그 전날 먹는 것부터가 시작인 걸까?' 하는… 무엇을 먹었는지에 따라 다음날 요가의 몸상태와 정신상태가 이렇게나 영향을 받는다면 요가원의 한 시간만이 요가 타임이 아니라, 그 전날부터 이미 요가는 시작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가 시간을 온전히 잘 느끼고 명상의 단계까지 다다르고 싶다면 좀 분하(?)지만 내면의 사감님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줘야겠다.
‘사감님이 이기셨네요. 하지만 점심은 천사님과 먹겠습니다아.’
-그밖에-
개인 요가매트를 사야 하나 고민 중이다. 우리 요가원은 공용 매트가 있긴 한데 오래되어서 냄새가 난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냄새가 난다. 땀냄새 같은 약간 꼬림한 냄새가. 3개월 첫 등록이 끝나면 내 전용 매트를 하나 사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젠 정말 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이놈의 귀차니즘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개인매트를 사용하여 매번 돌돌 말아 챙기는 귀차니즘을 감당할 것이냐, 냄새나는 공용 매트를 감당하며 몸만 왔다 갔다 하는 편의성을 택할 것이냐.'의 대립이 팽팽하다. 냄새는 싫지만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이 가뿐한 놀림이 너무 편하고 좋다. 하지만 편한 것은 위험하다했다.(?) 그리고 써보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다. 요가원에서 개인매트를 쓰지 않는 사람은 한 타임당 두세 명 밖에 되지 않던데 나도 이젠 개인 매트를 쓰는 이유를 좀 알아야겠다.
<40일 차: 존경스러운 회원님들>
빈야사 요가 시간이다! 아침부터 파워 업 하러 가볼까? 오늘은 어떤 동작들에서 고통을 느낄까?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도착한 요가원. 간단한 스트레칭 후 요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라? 갑자기 스피커 너머로 인도풍 비트가 나온다.
‘뭐지? 비트요가 시간으로 바뀌었어?’
순간 잠시동안 뇌정지가 왔다.
'아아아아 시간표가 바뀌었구나!! 비트요가 여태 두 번밖에 안 왔는데… 근데 맨 앞에 서다니. 아. 헤매겠는걸?'
문득 아까 입구에서 마주친 원장님과 주고받은 대화가 기억이 났다.
"진호님, 첫 타임 수업들 밖에 시간이 안 나시죠? "
"네. 아무래도… 이후에 다른 일들이 있다 보니..."
"그쵸. 시간표는 괜찮으세요? "
여기서 시간표는 괜찮으세요? 라는걸 나는 그저 현재 수업구성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 정도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닥치고 보니 그 말뜻이 바뀐 시간표가 괜찮냐는 질문이었단 걸 뒤늦게야 알았다. 이런. 매 월 초 문자로 보내주시는 시간표를 제대로 확인을 안 한 거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서는 "네! 좋아요!"하고 호기롭게 요가원으로 들어왔더랬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긴다. 아무튼 순식간에 나눈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나는 이내 다시 집중을 해야만 했다. 이미 비트는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올라탄 이상 끝까지 해내야만 한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 두둥.
재빠른 눈으로 주위 회원님들을 둘러봤다.
'여기서 제일 오래된 회원님이 누구시더라? 원장님을 보지 않고도 비트요가가 몸에 익어 잘하는 분을 찾자. 오늘의 서브 스승님은 그 회원님이다!'
원장님을 보고 따라 하면 되지 왜 다른 회원님을 또 찾냐 하면, 원장님은 앞에서 동작을 선 보이다 가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회원님들에게 다가가 코칭을 해 주시거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일어나 자주 움직이셔서 나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눈앞에 없으면 비트요가 동작을 잘 모르는 얼른 따라 할 다른 이를 찾아 눈을 바삐 움직인다. 오늘은 다행히 내 등뒤로 든든한 오래된 회원님들이 계셨다.
'오늘 하루만 제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속으로 듣는 이 아무도 없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고는 정말이지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 했다.
쉴 틈 없이 동작이 이어졌고 내 눈알도 회원님들을 따라가느라 쉴 틈 없이 굴러갔다. 그런데 이 느낌이 싫지 않았다. 마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동작을 잘 모르니 혹여나 놓칠까 한없이 따라가기 바빴던, 하지만 정말이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 했던 처음의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더 솔직해지자면, 빈야사가 아닌 비트요가를 시작하는 음악이 요가원에 흘러나왔을 때 살짝 마음에 지진이 일어났었다. 나는 내가 예상한 일들에서 벗어난 일이 갑자기 닥쳐오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인데 요즘 흔히들 말하는 mbti의 J유형의 인간이 나다. 심지어 비트요가는 그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수업이었다. 왜냐면… 나는 머리가 나빠 은근 율동이나 춤 같은 것들을 익히는데 남들보다 오래 걸리고 몸짓도 어정쩡한 탓에 스스로에 자주 현타를 느꼈기 때문이다. 막판에 몰아치는 복부운동이 내게 매우 고역인 탓도 있다. 아무튼 이래 저래 이런저런 이유로 마냥 피하고만 싶었던 비트요가였는데 이렇게나 갑자기 하게 될 줄이야! 마치 아무 장비 없이 헬기에서 밀쳐져 고공낙하를 뛴 사람이 된 기분이다.
'으악. 하지만 해보자.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고! 처음인 양 다시 정신없이 따라 하는 거야아……'
그냥 해보자. 는 말의 힘이 이젠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다. 내친김에 이렇게도 생각해 봤다.
'그래. 첫 비트요가 때 쓰러지기 직전까지 운동을 했었어. 복부는 너무 아파 막판엔 나를 내려놓기도 했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으니 지금의 내 몸은 이 동작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고통의 강도로 느낄지 궁금하긴 하다. 그러니 해보자.'
그냥 하자는 사람 치고는 생각이나 다짐이 꽤 많긴 하지만 나름 긍정적이지 않은가?
어느덧 중반부에 다다랐고, 오. 역시 나는 동작을 잘 외우지 못해 우왕좌왕 바보스러운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방향 감각도 없는지 혼자 엄청 버벅대다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소리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현타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뭐 어떤가. 못하니까 여기 있는 거지. 처음부터 잘했으면 나는 댄스강사나, 요가 강사를 했을 거다! 하지만 난 아직 햇병아리인걸? 이래 봬도 난 지금 매우 집중하여 열심히 하고 있다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땀으로 상의가 훌떡 젖어버렸다. 자. 이제 막판 복부 운동이다! 휘몰아치는 복부운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
아니요.
난… 이제는 준비가 된 줄 알았다. 지난 3개월간 나름 열심히 요가원을 왔었으니까. 물론 전보다는 좀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여전히 중간에 쥐어짜 내는듯한 상복부 통증에 손으로 살포시 윗배를 움켜쥐며 그냥 누워버렸다.
'아. 힘들어.'
하지만 이대로 계속 쉴 수 없다. 주위 회원님들을 보라!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웠지만 격렬히 움직이는 회원님들의 팔다리는 풀린 동공 너머로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하자. 나도 하자.'
한 5초 정도 쉰 다음 다시 복부를 일으켜 으쌰 으쌰 영차 영차 끝까지 해보려 몸부림친다. 그러다 이내 또 쉼.
'아. 아프네.'
또 5초 정도 상복부를 움켜잡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또 으쌰으쌰 영차영차.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짰다.
마지막 복부 운동을 끝으로 모든 비트요가 플로우가 마무리되었다. 동공은 이미 시작 30분부터 풀려 있었고 내 다리는 시작 10분 여부터 흔들거렸고 한 40분부터는 나는 나를 놓았다.
깨꼵(이건 내가 기절하는 소리다).
옆으로 돌아누워 매트에 앉아 나마스테 인사를 하는데 머리가 산발이 되어있다.
‘나 자신… 격렬한걸. 아니. 이대로 나가면 추노잖아.’
스스로에게 뿌듯해하다가 이내 머리를 고쳐 묶고 매트를 정리하는데 다른 회원님들은 그대로 앉아 다음 타임을 기다리신다.
‘와… 진짜 대단하시다들! 와… 와… 난 아직 멀었다.‘
속으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한 타임 만으로도 온 진을 다 빼고 하루의 체력을 다 쓴 기분이 드는데 2교시인 빈야사까지 하려고 앉아 계신 회원님들을 보니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론 아. 이래서 내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체력이 못 받쳐주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약골.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량을 찾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몸이 아플 것 같다. 물론 지금 나는 요가 이후의 시간에도 나름의 스케줄들이 있고 나에게 그 시간들 역시 중요하기에 마냥 남들이 한다고 나까지 무리해서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2교시까지 두 타임을 풀로 뛰는 다른 회원님들의 체력은 존경스러운 건 변함이 없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체력이 허락이 된다면 2교시까지 한번 풀로 뛰어 봐야지.
아직 보고 배울게 많다. 차근차근 천천히 해나가면 되는 거다!
모두들 각자 시간에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