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이 내린다.
오늘은 산책을 쉰다는 얘기!
그래서 쓸 말이 없다는 얘기! 심지어 쉬는 날이다.
나는 여즉 씻지도 않고 잠옷 바람으로 배를 긁으며 간식을 주워 먹다 낮잠을 자다 뒹굴거리고 있다.
정말 너무 행복하다. 그 무엇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러나 이 목요일 연재라는 걸 스스로와 약속했기 때문에 내심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마음에 남아있다가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얼른 쓰자! 하고는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무겁지 않게, 요즘 아침마다 일어나는 우울감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정확히는 무력감 같은 것. 나는 요즘 알람이 없어도 아침 여섯 시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는 불안에 잠식된 무력감을 느끼며 몸을 웅크린다. 그냥 좀 더 자버리자. 하고 눈을 질끈 감아도 이미 또렷해진 정신은 잠들 리 만무하다. 오늘은 그냥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대체 이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내 역할을 잘하고 있고, 끊임없이 무언가 들을 도전하고 나름의 성실으로 살아내고 있는데. 도대체 이 불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쉬이 떠나 주지 않는다. 적당한 불안감은 삶에 도움이 된다지만 이건 좀 도가 지나친 것 같다.
단순히 무언가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구나. 라는건 어렴풋이 알겠다. 나이 탓일까? 도 생각해 보았다. 으레 내 나이대에 가지는 불안감일까? 그러기에 내 친구 녀석들은 무난히 지나는 것도 같다. 아닌가? 다들 말하고 티 내지 않아도 속으로 들 불안해하고 있는 걸까?
그 친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왜 불안할까.
고민을 하다 한바탕 낮잠에 들었고 눈을 떠 게으른 커피를 마시고서야 이 나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눈에 보이는 만족할만한 성취가 없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찰나에 들었다.
그래. 나는 성취형 인간이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다.라고 해도, 그 기질이란 게 나도 모르게 잔잔하게 남아있나 보다. 그런 것 같다. 나의 핵과 같은 기질. 그 핵으로 곧장 뛰어들고 싶은데 그래서 미친 듯이 파먹어보고 싶은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답답한 상황이란 것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젊은 날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얼굴에 패. 기.라고 써붙이고 설치고 다니다 실컷 데이고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건가 싶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다만 지금 이 나이에는 어린 날의 패기나 괄목할만한 성취가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헌신하여 실컷 맛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을 갈구하고 있다. 어린 날처럼 ‘나‘를 내세우는 게 아닌, 열정 어린것들에 나의 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으로 앞으로의 시간들을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좀 더 고차원적인. 좀 더 성숙한. 그런 열정이 내 안에 아직 남아있다.
신기하게도. 무력감의 이면엔 내가 다그쳐놓은 열정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잘 풀어내보자. 그게 앞으로의 내 신상에도 좋을 일 같다.
조금 더 나를 수긍하고, 용기 있는 선택들을 해보기로. 어느 때보다 인내하고 어느 때보다 공들여서.
정말이지 뜬금없지만 비 오는 봄날, 침대에 앉아 떡진 머리를 한 채로 광대를 씰룩이며 힘 있게 타자를 두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