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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목요 산책 08화

봄 07. 뻥! 하고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사춘기도 春이니까

by 지호

<1>

“인생 ㅈ같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아침이었다. 아이는 아침밥을 먹고 일어나서는 볼 멘 얼굴을 하다 이내 그렁한 눈을 한 채로 허공에 저 한마디를 뱉어냈다. 오래 참은 말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져 마시려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남편은 벙 찌지만 어이없는 웃음이 비질비질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만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하흐하하하하하하하. 뭐라고? 야! 네 인생이 뭐가 어때서?!! (내 눈에) 잘생겼지! 공부 잘하지! 엄마 아빠 있지!!”

"그래! 고양이도 있고!! "

하고 남편도 거든다.


"아니. (씩씩). 몇 달째 다리가 아픈 거야!(씩씩).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씩씩)"

아이는 학년이 넘어가기 전, 겨울방학 때부터 새 학기가 무르익은 지금까지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가며 깁스 중이다. 장장 3개월 가까이 깁스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화가 날 만하다.

“친구들은 집에 초대해서 놀면 되잖아!”

나의 말이 아이의 등에서 고스란히 튕겨져 나오는 게 보였지만 괜히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씩 더 외쳐본다. 억울함을 동반한, 하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한 부아를 토해내듯 분주히 등교준비를 한다.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흑역사 하나 썼네. "

나는 그 말에 또 끅끅거리며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혹시나 아들이 들을세라. 가뜩이나 본인에게 화가 날 텐데 내 웃음소리가 약 올리듯 거드는 꼴이 되어선 안되니.

“아 진짜 너무 웃기네. 근데 욕을 안 하던 애가 갑자기 저 문장부터 뱉으니까 당황스럽긴 하다.”

“뭐. 올게 온 거지. 우리 앞에서 안 해서 그렇지 친구들끼리는 많이들 할걸?”

“그렇겠지. 흠. 근데 나는 어른 앞에서는 욕하지 말라고 가르쳤거든. 근데 저 부아는 본인에게 하는 게 느껴지니까 뭐라 나무라기가 그러네. 상황이 너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

“그러게. 다음에 또 그러면 다그쳐야지. 마이 컸네.”

티벳 여우 얼굴을 하고는 등교준비를 마친 아이가 현관 앞에 섰다. 나는 그 모습에 그만 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야~ 너 무섭더라!”

“그럼. 욕을 안 하던 사람이 하면 무서운 법이니까.”

이 말은 내가 예전에 지나가며 해준 말이었다. 입에 추임새처럼 욕을 달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아들에게 ‘네 나이대에는 강해 보이려고 욕을 주렁주렁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진짜 강한 사람은 함부로 욕하지 않아. 화도 자주 내는 사람보다 어쩌다 한 번 내는 사람이 더 무섭듯 욕도 마찬가지야. 자주 하는 사람은 가벼워 보여. 고요한 사람이 뱉는 욕이 더 무섭더라. 고요하되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게 제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내면이 강하면 그 사람은 자연스레 기세가 생긴다. 가벼운 욕보단 고요한 기세가 더 무섭다는 걸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있어.’라는 등의 주절주절, 길게도 말했었다.


나의 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대부분 공중에서 퐁퐁 분해되었겠지만, 필요한 상황에 묵직한 욕은 정신건강에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가 보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란걸 알려줄 필요도 있다. 오늘은 조금은 유연하게.

“하하.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엄마 아빠 앞에서 욕을 하다니 좀 당황스러웠어”

"그건, 내 인생에게 욕을 한 거야."

“그래. 그래서 나무라지 않은 거야. 답답하겠지. 그치만 어른 앞에선 욕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응...”

“네가 고생이 많다. 잘 다녀와! 오늘 하루 성실히, 즐겁게 보내는 것만 생각해. 그러면 이것도 다 지나 있을 거야.”

역시 기대 않았지만 아이는 무언의 대답을 하고는 현관문을 나섰다.


휴~ 하고 나도 모를 안도의 숨이 살짝의 웃음과 함께 섞여 나왔다.




한바탕 새로운 연극의 서막이 시작된 느낌이다.

- “인생 좋같네!”를 외치며, 그렇게 아이의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같은.


그리고 나의 새로운 고민 또한 시작이 되었다. 곁에서 하나씩 알려 주고 바로 잡고 밀어주던 어린이의 시절과 달리 청소년기는 한 걸음씩 떨어져 바라보고 지지하는 단계라고 하니. 이 새로운 서막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적당히라는 것이, 정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겪어 보지 못한 챕터이기에 살짝의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또 설레기도 한다. 어떤 정서의 어른이 될지는 나와 내 남편에게 달려있겠지. 정서란 것은 개인에게 너무나도 당연히 부여되는 것이기에 어떤 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란 사람이 잘할 수 있을까? 나 또한 미숙한 어른일 뿐인데..


이렇게 곁으로 당겼다가 풀었다가, 우리 사이의 끈을 서로 감으며 풀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후루룩 하고 퍼어런 창공을 향해 날갯짓하며 날아가겠지.

이왕이면 태양 빛에 눈이 부셔 미처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퍼드득 하는 날갯짓으로 저 멀리 나아갈 적에 나는 눈부신 태양에 못 이긴 듯 기분 좋은 찡그림으로 기꺼이 끈을 놓아주고 싶다. 멋진 바람과 함께.


그전에, 너는 한바탕 너의 알을 깨야하겠지. 너의 알은 무엇일까. 너의 내면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꽤나 요란하려나.

너의 사춘기, 새로운 봄의 시작처럼.


<2>

오늘 연재가 늦은 이유는, 오전에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학년이니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다리를 다친 아이를 맡긴 부모의 마음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곁에서 챙겨주는 친구들에게 감사의 눈인사라도 할 겸 학교로 향했다.


우리 부모님 왔나 어쨌나 적극적으로 둘러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녀석은 좀처럼 둘러보지 않는다. 뭐, 내가 갈까 말까 물어보았을 때도 엄마 편한 대로 해.라고 대답하던 녀석이었으니. 그래도 적극적으로 돌아보진 않지만 내심 궁금하여 슬쩍 둘러보던 녀석의 레이더망에 얻어걸렸고 우린 가볍게 손을 올려 인사를 했다.


참관 수업이 끝이 났고 아이들은 제각각 흩어져 부모님에게로 쪼르르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간단히들 하는 것 같았는데 녀석은 나를 피해 다닌다. 어이. 나 좀 봐! 어디 가는 거야; 하며 나는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고, 녀석은 다친 다리로 목발을 짚으며 요리조리 나를 피해 친구들에게로 갔다.


‘쳇… 내년부턴 안 와도 되겠군.’


무언가를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그래, 수업 잘했으면 됐다! 잘 봤으니 나는 간다.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목에 좋아하는 꽃나무를 보러 잠시 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우리 동네 가장 좋아하는 꽃나무인데, 초 봄부터 녀석이 만개하기만을 기다렸다. 너무 예쁜 진분홍이기 때문이다. 헌데 요 녀석 보소. 지 혼자 한차례 파티를 끝내고 노곤한 얼굴로 늘어져있다.

이렇게 봄의 초입부터 만개하기만을 기다리던 아이였는데,
나 모르게 자지러지게 피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 잘 피었으면 되었다.


"너도 사춘기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잘 피었으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예전처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필요도, 모든 것을 알 필요도 없겠지. 그럼에도 잘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하나면 될 일 같다.

그게 참 자연스러운 일 같아. 다행이다. 자연스러운 게 좋을 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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