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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목요 산책 06화

봄 05. 길은 가깝고 마음은 멀다

by 지호

멀리 있는 마음과 산책을 했다.




의도하지 않은 일들로 며칠을 보냈다. 의도하지 않은 만남. 거절할 수도 있지만 책무라 느끼는 감정과 정말 좋아서 하는 감정 사이 그리고 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 어딘가에서 나는 또 미련한 씨름을 했다.


사람 일이 다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면 좋을 것을.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꿈을 먹고 자라는 이들에겐 꽤나 큰 좌절감을 준다. 다리가 달려 있음에도 다리가 없는 사람처럼, 걷는 법도 모르는 채로 뛰겠다 우격다짐하는 사람처럼, 보기 좋게 약속이나 한 듯 고꾸라지게 만든다. 다시 일어서서 달릴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지겹게도 넘어지고 깨져버린다. 미련한 성실함. 나를 가리키는 어떤 말 중 하나였다.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건조함을 핑계로, 눈물을 핑계로 감아버리기엔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아졌다. 어른이라서, 응당, 같은 어떤 당위성보단 그저 이제는 똑바로 쳐다보고 내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러니 상처도 알아차리고 미련함도 바로 보게 된다. 많이 아프지만 그리 하기로 했다.


나의 이상은 아무리 쏘아 올려도, 아무리 바람에 날려 보내도 가닿지 않는 노래였다. 그 마음이란 건 완전히 성질이 다른 환경에 놓인 행성처럼 멀고도 이질적이다. 어떤 수고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식처럼. 보란 듯이 견고한 진공의 울타리를 만들어 걸어버린다. 철저하게, 또 그 나름의 성실함을 안고서.


어떤 불가해의 영역이라던가 닿지 못하는 마음의 거리 그 심연에는 생존이 있다.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에 수식은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그리하여 개인에게 타당성을 부여하고 합리성을 실어준다. 치열하고도 성실하게 깨부수려 노력해도 너무나도 견고한 수식 앞에선 그 어떤 상식과 자연스러운 소통도 힘이 없다. 그저 같은 값만을 무기력하게 바라 볼뿐이다. 어디에서 오류가 났고 어떤 변수에 반응하는지 알 수 없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불가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다시 걷는 법을 배운다.


어설픈 걸음으로 산책을 갔다. 이제 갓 스스로 알아차린 걸음으로. 갓 태어난 송아지의 걸음처럼.




멀리 있는 마음과 산책을 했다.

길은 가깝고 벚꽃은 손에 잡힐 듯 다정한데 마음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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