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Jan 19. 2022

피어싱은 쫌!

스트레스받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 부모는 더 불쌍하다.

우리 클 때도 물론 나름 힘들었겠지만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물질적으로는 물론 풍족해졌지만 행복하다고 하는 아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나름대로 '방목'하면서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순전히 '우리 생각'이고 아이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할 때가 많은가 보다. 일전에는 피어싱을 하겠다고 도전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뭐, 피어싱. 이미 귀걸이 할 구멍 지난번에 뚫었잖아. 뭘 또 뚫어?"


피어싱은 그거랑 다른 거란다. 귓불이 아니라 연골에 구멍을 내는 거라고 친절한(?) 설명을 한다. 요즈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피어싱을 하면 시원할 것 같단다. 좀 어이가 없다. 귓바퀴에 구멍을 낸다고 스트레스가 그 구멍으로 빠져나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안 돼. 정 뚫고 싶으면 나중에 니가 돈 벌어서 이 집에서 독립해 나가면 뚫어"


'하아' 한숨을 쉬면서 자기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린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긴 해두었는데 뭔가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음날 카톡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꼬맹아.

어제 네가 피어싱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가 거절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어싱을 하면 풀린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피어싱을 할 수는 없지 않겠니.

스트레스의 원인을 해결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무엇이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귀에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으면

다음엔 입에 하고, 혀에 하고...하아...

그걸로도 안되면 다음엔 또 어디에 할까.


살다 보면 지금보다 힘든 일이 더 많을 거야.

비유를 하자면...

아기 때는 자갈밭을 걸어가도 힘에 부치지

조금 커지면 자갈밭은 괜찮지만 커다란 돌들이 있는 길을 가야 하고.

어른이 되면 바위산을 넘어가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될 거야.


아기 때 그리고 지금 너만 한 나이일 때

힘들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너를 번쩍 안아 들고 성큼 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엄마 아빠가 없어지고 난 후에 커다란 바위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때는 우리가 도와줄 수 없지 않겠니?


네가 지금 힘이 들고 어려운 거 알고 있어.

다만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네가 이야기하지 않아서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미 넌 다 커버린 것 같아.

(혼자서 척척 알아서 하니깐...우리 할 일이 없네.)

(자랑스럽고 똘망똘망한 우리 딸)

너한테는 지금 이 경우가 넘어야 할 바위산이겠지.

바위산을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단한 체력이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

금방 뚝딱하고 생기지 않아.


피어싱이 부단한 노력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마치 마약처럼 잠깐 눈앞에 놓인 바위산을 회피하는 정도라고 생각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네가 바위산을 넘을 수 있도록 체력을 키우는 일을 도와줄 수 있을 뿐이야

결국에 바위산을 넘어 더 높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건 너밖에 할 수 없어.


공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늘 장난처럼 말했지만... 살아보니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그리고 네가 이제 만날 세상은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 세상일 거야.

새 세상에 필요한 것이 공부가 아니란 것은 확실해.

왜냐하면 네가 지금 학교 공부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옛날 사람에게 필요한 옛날 지식일 것일 뿐이거든.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이제 인터넷 세상과 가상공간에 모두 다 있어.

어디 있는지 알고 찾아서 사용하면 그만인 거지.


지금 네가 할 일은 사실 학교 공부가 아닐 수 있어

단단한 마음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혼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해.

혼자서 생각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을 거야.

기계 또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거든.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것.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많은 INPUT이 필요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야.

좋은 책을 골라서 읽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하는 훈련이 바로 마음의 힘을 키우는 훈련이야.

마음의 힘을 키우게 되면 걱정과 스트레스는 쉽게 극복할 수 있어.

피어싱으로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러고 나서 우리 꼬맹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같이 생각해보자.


피어싱 때문에 시작한 말이 너무 길어졌구나.




이렇게 보내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칠  아이에게 물어보니 너무 길어서  읽었다고 한다. (이런 뭥미!!! 읽었다고 하면 쑥스러운 상황이 연출될까  피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어찌 되었든  이상 피어싱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못하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라서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주려고 하지만 이것도 부모 욕심인 듯싶다. 그냥 아프지 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소망한다.


아이 키우는 일이 오늘은 좀 어렵다.

2021-11월-24일.


며칠 뒤 본 너튜브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공감을 해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95점을 받아온 아이에게

"거 봐. 하면 된다고 했지.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해서 100점 채우자"라고 말하는 대신

"(조금 바보 같은 표정으로) 흐흐. 내가 이렇게 좋은데 너는 얼마나 좋을까"라고 공감해 주란다.


우리 집 아이가 95점을 받아올 일이 없으므로 똑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호시탐탐 공감을 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이가 밥을 먹으면서 우스운 이야기를 하다가 먹던 밥을 옷에 뿜어 버렸다. 드디어 공감할 기회가 왔다.

"푸하하. 내가 이렇게 더러운데 너는 얼마나 더러울까"하고 공감(?)을 해주었다.


아이 키우는 일이 그날은 좀 더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에게 배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