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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09. 2021

아이에게 배운다

어른들 엿먹이기

우리 집 꼬맹이는 이제 중3이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녀석이 이제 너무 커버렸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아기이다.


오늘 아침 슬쩍 무얼 내밀더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단다. 학교에서 내어준 숙제(?)같은 건데 행복한 가정을 위한 어쩌구저쩌구란다.

자기가 채워야 할 부분은 모두 채웠으니 부모가 채워야 할 부분만 채워주면 된단다.


스윽 보니 ‘엥! 이게 뭐지’ 싶다.

답이 어쩐지 너무 무성의하다.


“너무 대충 답한 거 같은데”


이유가 있단다.

어쩌자고 이런 식으로 이딴 걸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단다. 아빠 엄마가 사정이 있어서 할머니가 키울 수도 있는데.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같이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런 친구들에겐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겠어?”


이런 똑 부러지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듣고 보니 니 말이 맞다. 어른들이 잘못했네. 근데 그거랑 이렇게 쓴 거랑 무슨 상관이지?”


이런 엉터리를 만든 어른에게 ‘엿’을 먹이고 싶단다. 직접 욕을 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겠단다.


. 빨리 아빠도 채워줘. 학교 가야 


문제) 너와 함께한 시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어.(좀 닭살스럽다)

답) (잠깐 생각하다가) 매 순간


“너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나두 완전히 짧은 단답형으로 썼어”


스윽 보더니 깔깔거리면서 아주 즐거워한다.


“역시 아빠와 나는 비슷해. ㅋㅋㅋ”


아이에게 칭찬을 들은 나는 기분 좋게 출근을 하고 아이는 학교에 가고...아내는 오늘도 혀를 끌끌 차고 있다.


아이 키우는 일이 오늘 오전은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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